디지털 영화 제작이 활성화된 초창기에 선보인?데뷔작 <장례식의 멤버>(2008)는 현실과 환상의 교차점을 지나가면서 젊은 세대의?고민과 인간 사회의 풍경을 보여주는 중요한 한국영화 중 한 편이었다. 백승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나와 봄날의 약속>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영화의 내용을 통해 현실을 넘어서는 환상과 기다림에 관한 장면들이 늘어났다. 세 가지 에피소드가 교차하는 이 작품은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종말 전야를 무대로 각 세대와 캐릭터들이 겪는?이상한 모험을 풀어놓는다. 감독 이귀동의 시나리오를 빌미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어쩌면 감독의 망상과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각 에피소드의 결미를 통해 던져지는 에너지는 억눌린 자의 심경과 폭발할 것 같은 굉음을 낸다. 만일, 영화의 본질이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이나 돌파일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가장 어울릴만한 답변들을 던져준다. 그것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영화감독이 하는 일은 그런 것이라는 수긍의 감정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