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진의 동명희곡에 기초한 전통설화 형식의 <한네의 승천>은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윤회적 비극을 다룬다. 선녀담이라는 폭포에 빠진 처녀 한네를 마을 노총각 만 명이 구하는 것이 비극의 시초다. 한네는 수십 년 전 같은 폭포에서 자살한 만명의 어머니와 닮았고 마을의 어른들은 이를 불길하게 여긴다. 특히 만명의 어머니를 범하고 죽게 만들었던 마을의 제사장 윤필주는 한네가 환생한 만명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세대를 바꿔가며 지배자의 욕망에 죽임을 당하는 피지배자들의 운명을 설화적 분위기로 우회하면서 하길종 감독은 판소리, 민요, 탈춤 등의 전통연희적 양식을 화면에 삽입해 이 모든 것을 슬픈 제의처럼 꾸민다. 당대 권력과 불화했던 하길종의 예술적 반역의지였을 것이다. [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