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힘든 때일수록 모험이 필요하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2018-05-06 17:42:00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리버스 엣지>는 1994년 출간된 오카자키 교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세 청춘이 불안한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이야기인 이 만화는 작가의 대표작이자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청춘시절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많은 일본감독들이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다. 영화의 출연배우인 니카이도 후미가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하면서 영화화가 성사될 수 있었다. 영화 <리버스 엣지>는 야마다(요시자와 료), 하루나(니카이도 후미), 코즈에(스미레) 등 불안한 청춘 남녀 셋이 남들이 모르는 시체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되는 이야기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24년 전 만화로부터 어떤 동시대성을 포착했을까.

연출 제안을 받아들인 뒤 원작 만화를 다시 읽어보니 어땠나.

만화 어디에도 확신적인 표현을 하는 인물이 없더라. 독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어릴 적 만화를 읽었을 때와 다르게 느꼈던 감정들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새로운 도전이 뭔가.

원작 만화는 1994년 출간됐는데 당시 20대 중반 청춘이었다. 당시는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시기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만화는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 다음해인 1995년, 한신대지진, 옴진리교 가스 테러사건(옴진리교 신도들이 도쿄 지하철 전동차 안에 맹독

가스인 사린을 살포한 사건-편집자)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만화는 다음해 일어났던 사건을 예언한 셈이 된다. 지금 읽어보니 만화와 당시 사건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모아졌다. 불안한 현실과 죽음을 예언하는 메시지를 보여주면 되겠다 싶었다.

24년 전의 청춘은 지금과 많은 차이가 있을 거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고민했나.

배우들이 24년 전 만화 속 캐릭터에 얼마만큼 공감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열쇠가 될 거라 생각했다. ‘지금 세대가 공감한 지점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배우들에게 던지는 인터뷰를 했고, 그렇게 찍은 인터뷰를 극 사이사이에 집어넣었다.

그 인터뷰가 배우의 실제 생각인지, 아니면 캐릭터의 생각을 대변한 건지 모호하던데.

사전에 대사가 주어진 게 아니라 배우가 가진 생각을 그대로 담았다. 인터뷰를 언제 할 건지 미리 알려주지 않고, 촬영을 하다가 갑자기 찍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배우들이 자신이 어떤 캐릭터인지, 어떤 생각을 가진 채 연기하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되돌아보면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는 “힘들어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 청춘에게는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그 만화가, 이 영화가 지금 시대를 반영한다고 본다. 많은 일본인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희망조차 얘기하기 힘든 현실인데, 이런 상황에서 청춘들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둡고 무거운 생각이라도 에너지가 되어 폭발한다면 사회는 다시 변할 수 있다. 사회가 힘든 건 우리에게 기회고, 살아가기 힘든 시기에서야말로 모험이 필요하다.

다음 작품은 뭔가.

올해로 쉰 살이 됐다. 쉰 살이 되면 오리지널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말을 항상 입버릇처럼 했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이미 완성했고, 여름에 촬영을 시작한다. 성에 눈을 뜨는 소년을 그리는 매우 과격한 작품이다. 한국도, 일본도 블록버스터가 늘어나고 있고, 영화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60살이 되기 전에 누구도 만들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을 내놓고 싶다.

글 김성훈·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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