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미 영화의 미래다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 알멘드라스, 카밀라 호세 도노소 감독)
2018-05-07 23:45:00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이하 JCP)에 선정된 5편의 영화 중 2편의 해외 영화 <우리의 최선>과 <노나>는 공교롭게도 모두 칠레 출신 감독이 만든 영화다.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와 카밀라 호세 도노소가 그들이다. 사랑과 관계에 관한 주제를 보다 영화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형식적 고민의 결과인 <우리의 최선>과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문 <노나>는 서로 전혀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남미 영화의 강력한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결을 같이 한다. 칠레에서 사제지간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는 이들은 영화 표현의 해방구를 찾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왔다. 두 감독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만나보자.

첫 멜 로 , 자 전 적 경 험 담 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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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최선> 감독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 알멘드라스

“전주영화제가 아니었다면 이번 영화는 제작될 수 없었을 거다.” 올해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이하 JCP)에 선정된 <우리의 최선>의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 알멘드라스 감독은 “투자 받기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의 손길을 뻗친 JCP에 고마움을 표했다. <우리의 최선>은 연극무대 초연을 6주 앞두고 마땅한 여배우가 없어 고심하던 연극 연출자 페테르(이리 마들)가 우연히 나타난 배우 카롤리나(엘리자베타 막시모바)에게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극장 사업에 사활이 걸린 연극 무대를 망칠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 이야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마리카 소포스카)와의 사이마저 멀어지게 되면서 페테르는 남성으로서 뜨거운 사랑의 욕망과 젠더 권력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킨다. 알레한드로 감독은 갑갑한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4:3 스탠더드 사이즈를 택했고 모호한 위치에 놓인 인물들의 상황을 담기 위해” 흑백영화로 구상했다. 그의 형식적 고민은 평생 신뢰를 쌓아왔던 결혼 관계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또 활활 타오르는 듯했던 운명적인 만남 때문에 일상의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인물들을 희화화하기 위함이었다. “페테르의 상황 속에는 남성으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알레한드로 감독은 주로 정치적인 소재, 이를테면 국가의 정의나 지역사회의 계층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4번째 장편을 만들고 아내와 이혼을 한 뒤 새로운 연인을 만나 아기를 갖게 됐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이번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 “처음으로 남녀간의 멜로를 담아보고 싶었”던 그는 1960년대 체코 뉴웨이브를 주도했던 밀로스 포먼, 이반 파사르 감독의 영화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정 장르나 소재에 머무르기보다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그는 차기작으로 SF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AI를 소재로 지구 종말을 다루는 영화가 될 것이며 아주 즐거운 영화가 될 것 같다.(웃음)” 현재 일본, 콜롬비아, 캐나다 등에서 합작을 논의 중이라고. 취향과 태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변형하듯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전주에서 또 만나보길 희망한다.

김현수

“ 모 호 함 은 우 리 삶 의 일 부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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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 감독 카밀라 호세 도노소

“친할머니 얼굴이 도시 전체에 붙어 있다니, 그저 놀랍고 감사하다.(웃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속 주인공은 <노나>의 주연배우이자, 카밀라 호세 도노소 감독의 친할머니다. “영화를 공부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할머니와 뭔가를 함께 하고 싶었다. 할머니에게는 프랑스 누벨바그를 연상시키는 어떤 매력이 있다.” 방화라는 소재 역시 실제 할머니가 살던 마을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칠레의 피칠레무 마을에서는 늘 미스터리한 화재 사건이 많았는데, 스페인에 점령당하는 등 굴곡 많은 역사와 마치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노나>는 형식적으로도 허구와 다큐멘터리가 거의 구분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할머니와 손녀, 배우와 연출자의 친밀함을 위해 일부러 사적인 부분을 강조한 장면은 8mm이나 16mm 필름으로 촬영해서 빛바랜 사진 같은 이미지를 얻었고,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은 평소 할머니가 즐겨 듣는 노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제 마을의 소방관들을 동원해 연기 아닌 연기를 시켰다고 감독은 말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사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는 우리 삶의 일부이지 않나. 어차피 우리 삶의 많은 것들

은 픽션이다. 할머니 역시 허구 속의 살아 있는 인물 같다.”

극중 주인공 ‘노나’는 영화가 좀처럼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노인 여성이며,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거나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카밀라 호세 도노소 감독은 “노나는 어떤 남자가 자신을 쟁취하려고 하면 성기를 발로 차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부연했다.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물을 신선하게 묘사하는 태도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클럽 로셸>(2017)은 멕시코의 어느 클럽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행복을 느끼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나오미 캠벨>(2013)은 가난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형 수술 리얼리티 쇼에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성소수자, 노인에 이어 감독이 주목하는 소재는 역사다. 칠레, 페루, 볼리비아를 둘러싼 적대적 외교 관계에 관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오래 전의 역사적 사건이 지금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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