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자유롭게, 당당하게 <프랑스여자> 김호정, 김지영, 류아벨
2019-05-04 23:02:00

“여배우들이 주축이 된 영화가 너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프랑스여자>는 가뭄에 만난 단비가 아니었을까. 김희정 감독의 <프랑스여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가 20년만에 귀국한 미라(김호정)와 과거 함께 연극을 했던 동료 영은(김지영), 해란(류아벨)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되는 영화다. 세대가 다른 세 배우가 만나 이루어내는 절묘한 조화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영화 밖 현실에서도 그랬다. 서로 다른 시간을 통과했지만 배우로서의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세 배우 김호정, 김지영, 류아벨을 만났다.

<프랑스여자>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

김지영 <열세 살, 수아>(2007) 때 김희정 감독님에게 출연 제의를 받았다. 그때는 연이 닿지 않았는데,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던 때에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연속극을 연달아 찍다 보니 내 연기가 정체된 느낌이 들고 더 보여줄 표정도 없는 것 같아 고통스럽던 시기다. 그러다 1년쯤 뒤에 작품을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게 <프랑스여자>였다.

류아벨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가 이미지로 다가왔다. 이 이야기를, 이 이미지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까 궁금했다. 한편으론 내가 맡은 역할이 이야기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에, 나조차도 혼란스러우면 어떡하지, 내가 연기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감독님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점점 감독님이 원하는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호정 전작 <설행_눈길을 걷다>(2016)를 인상 깊게 봤다. <프랑스여자>는 영화적으로 더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시나리오가 너무 매력적이었 다. 이런 게 바로 독립예술영화지, 싶더라.

모두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를 떠안았다. 우선 미라는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쓰는 인물이고, 해란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1인 2역이고, 영은은 김희정 감독의 모습이 반영된 영화감독 캐릭터다.

김호정 촬영을 1~2주 앞두고 남편 쥘 역의 프랑스 배우(알렉상드르 구안세)를 만났는데 내 발음을 듣더니 ‘너의 한국어 소리는 참 매력적인데 불어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나 암담했는지. (웃음) 그때부터 발음을 다시 수정했다. 프랑스어를 음절 단위로 외워서 연기했다. 하나의 단어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김지영 호정 언니가 말도 못하게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특별히 어려운 게 없었다. 감독님도 ‘그냥 지영씨 모습 그대로 연기하면 돼~’ 라고 하셨다. 주변에 워낙 감독들이 많고 익숙하게 상대해온 직업이 영화감독이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류아벨 감독님이 사람 같으면서도 귀신 같으면 좋겠다고 주문을 하셨는데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한국영화 100년의 시간을 만들어 온 주역들이기도 하다. 자신의 영화 역사를 돌아봤을 때 특별했던 작품을 꼽아 본다면.

김지영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과 <터치>(2012)가 아닐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임순례 감독님을 설득해 좀더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캐릭터를 구축했는데 결과적으로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아 고마운 작품이다. <터치>는 바람만 불어도 살이 쓰린 느낌이 들 정도로 사력을 다해 찍은 작품이라 잊을 수가 없다.

김호정 <화장>(2014)을 하려고 마음먹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다. 피골이 상접한 상태가 된다는 것, 치부를 드러내 보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왜 배우를 하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되더라. 마음을 비우고 작품에 임했는데, <화장>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프랑스여자> 역시 내게 오래도록 남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류아벨 연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작품을 꼽기가 쉽지 않은데, 특별하고 소중한 영화를 앞으로 더 많이 찍겠다!

글 이주현·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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