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의 예술 <국가의 탄생> <L. 코헨> 제임스 베닝 감독
2019-05-09 10:55:00

“내 작업의 가장 큰 화두는 지속(duration)이다.” 10여편 이상의 작품으로 꾸준히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제임스 베닝 감독. 장면의 지속을 넘어 40여년 이상 작가로서 굳건함을 지켜온 우리 시대의 거장이 올해 <국가의 탄생>과 두 작품으로 돌아왔다.

<국가의 탄생>은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의 일부를 설치 작품으로 재해석했다.

그리피스의 영화는 매우 인종차별주의적인데, 영화 언어의 관점에서는 걸작으로 여겨지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현재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과 함께 빠르게 인종주의적 시각이 강화되고 있다. 1915년 영화가 비추는 남북전쟁 직후 앨라배마주의 모습이 2019년의 미국 사회와 명료하게 전환된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작업했다.

입을 맞춘 채 전쟁터에 쓰러져있는 두 병사, 목화를 따다가 지나가는 백인에게 인사를 하는 흑인, KKK 기마단의 행렬까지 총 3개의 장면을 발췌한 뒤, 이를 선형적인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고 3개 채널을 통해 동시에 보여준다.

우선 동성애 혐오가 매우 강했던 시대인데,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리피스가 호모 섹슈얼한 이미지를 찍은 것이 놀라웠다. 타자의 차이와 다름에 대해 너무 쉽게 분노하는 우리 시대에 이 장면이 다시 화두를 던지길 바랐다. 노동 중에 백인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흑인의 모습은 매우 일상화된 권력 층위를 보여준다. KKK 숏은 단순히 말해 악인을 영웅처럼 찍어둔 경우다. 이 세 이미지가 ‘미국의 탄생’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각 장면별로 미국 국기의 3색을 입혔다.

은 오레곤 주 농장에서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광경을 45분 간 보여준다.

보통 일식을 보여줄 때 천체에 주목하지만, 나는 미국 대륙에 그림자가 끼치는 영향을 보고 싶었다. 달 그림자의 경도를 미리 계산했고, 최대한 3차원적 공간감이 느껴졌으면 했다. 원경에 산이 보이고 중간 즈음엔 전화 전봇대가 있는 식으로 Z축이 살아있는 풍경을 택한 이유다. 일식이 시작되면 그림자가 약 10초 간격으로 서서히 카메라 쪽으로 다가와, 2분간 세상이 온전한 어둠에 잠긴다.

2016년에 유명을 달리한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그의 시와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 코헨이 세상을 떠난 지 약 9개월 지났을 무렵에 이 작품을 촬영했는데, 낮과 밤이 덧없이 바뀌는 일식의 광경이 삶에 대한 메타포로 느껴졌다. 시간 그 자체를 자각하는 것. 어쩌면 이게 코헨이 늘 찾던 정신적 모먼트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썼다. 그동안 내 작품과 비교하면 너무 낭만적인 선택일까? 그래도 괜찮다. (웃음)

글 김소미·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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