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수·문석·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안전이 우선, 온라인과 오프라인 병행하며 길 찾는다’
2020-05-29 12:29:00

영화제 개막을 열흘 앞두고 전진수·문석·문성경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세명은 무척 분주해 보였다. 라인업을 확보하고, 극장 상영만 신경 썼던 예년과달리 올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장기상영 모두 준비해야 하는 까닭에 평소보다 업무가 복잡하고 더욱 꼼꼼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당장 무관객 영화제로 치러야 하는 상황을 감독, 프로듀서 등 창작자들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국내외 많은 영화제들이 어떻게 운영할지 혼란을 겪는 가운데, 세 프로그래머는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안들 중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장기상영이라는 안을 선택했고, 그런 결정대로 영화제를 운영하는 수밖에 없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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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개막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전진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영화제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진행되는 건 전주영화제가 처음이다. 프로그래머만큼이나 스탭들도 새로 치르는 방식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다.

문석 그러다보니 업무가 반복되고 있다. 영화를 초청했다가 취소하고, 다시 온라인에서 상영하기로 하는 식이다.

문성경 전주영화제는 지역 축제인 동시에 영화가 관객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창작자들이 오래 진행해 만든 영화가 관객을 제대로 만날 수 없게 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알려진 대로 다르덴 형제가 처음 내한하기로 했는데 오지 못하게 돼 무척 아쉽다. 관객이 모여 영화를 보고 활발하게논의할 수 있는 작품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선정했는데 그런 장이 열리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관객이 최대한 안전하게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장기상영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을 수급하는 과정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창작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이 중요했을 것 같다.

문성경 그들에게 이해를 구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먼저 진행한 해외영화제 사례를 연구했고,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온라인 상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구했다. 관객에게 선보일 기회가 사라지는 것보다 온라인에서라도 상영하는 게 좋겠다는 분들도 있었고, 온라인 상영은 안된다고 한 분들도 있었다. 전자는 온라인 상영으로, 후자는 오프라인 장기상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영화제가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알아줘서 감사하다.

문석 한국 영화인들은 영화제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된 상황을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 온라인 상영을 너그롭게 허락해준 감독님과 제작자 분에게 감사하다.

전진수 물론 수입사나 외국의 대형 배급사는 극장 상영을 해야 해서 온라인 상영을 현실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 결정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어쨌거나 15년째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도 영화제를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최근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 자리 잡으면서 가능해진 게 아닌가 싶다. 전주영화제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가고 있어 그만큼 부담감이 있고,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크다.

-지난해 합류한 문성경 프로그래머와 달리 전진수·문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처음 전주에 합류했는데.

전진수 지난 14년 동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음악 장르를 선보여왔다. 영화제 인생을 서서히 정리해야 하는 시기에서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었는데 그 점에서 전주영화제가 매력적이었다. 지난해 집행부에 큰 변화가 있었던 걸 감안하면 이준동 신임 집행위원장이 조직을 빨리 안정화시킨 것 같다.

문석 <씨네21> 기자 시절부터 전주영화제에 관심이 많았고,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아 프로그래머를 해보고 싶었다. 허문영, 남동철 등 <씨네21> 기자, 편집장 출신들이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영향도 있었다.

-세 프로그래머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나.

문석 내가 아시아 지역과 한국을, 전 프로그래머가 유럽 지역을, 문 프로그래머가 미주 지역을 담당하지만,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엄격하게 역할을 분담하기보다 세 사람이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

-국제경쟁과 한국경쟁을 꾸리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문성경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이 선정 기준이라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전주영화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정하려고 했다.

전진수 국제경쟁부문에 지원한 작품 수가 예년에 비해 많이 늘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 세명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두명이 합류해 국제경쟁에 한해 라인업을 꾸리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지역 안배도 고려했다.

-올해 지원작들의 경향은 어떤가.

문석 선정작의 절반 이상이 러닝타임이 70여분이다. 이 작품들의 상당수가 방송쪽에서 투자를 받아 제작된 콘텐츠들이다. 갈수록 영화와 방송의 경계가 무너지는 변화들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또 여성 서사를 다루는 영화가 굉장히 많았다. 특별히 여성 서사를 신경 쓰려고 하진 않았는데 선정해보니 여성 서사 영화가 많았고, 그건 아마도 최근 영화산업에 분 페미니즘과 미투의 영향 때문이지 않나 싶다.

전진수 국제경쟁도 경향이 비슷하다. 특히 여성 서사 영화는 전세계적인 유행 같다.

문성경 또 형식을 확장해서 예술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시도가 많았다. 전주영화제 하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제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스페셜 포커스 부문에서 공개되는 KBS <다큐 인사이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시리즈는 방송사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인데.

문성경 <자백> <삽질>이 그랬듯이 방송쪽 다큐멘터리를 전주영화제에서 상영한 사례가 있었다. 방송쪽에서 제작된 콘텐츠라도 영화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끌어안자라는 의견이 영화제 내부에서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방송에서 방영된 콘텐츠를 가져와 영화제에서 그대로 상영한 적은 없었는데 <모던코리아> 시리즈를 보니 영화적 가치가 있어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 극장이라는 공간에 모여 공동체적 경험을 하면서 토론을 하면 좋겠다 싶어 틀게 됐다.

-영화제를 코앞에 둔 각오를 말해달라.

전진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기 시작했다. 평창, 부천 등 다른 영화제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영화제작이 위축된 상태라 앞으로 어떤 변화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뉴노멀을 준비해야 되지 않나 싶다.

문석 뉴노멀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프로그래머 추천작

전진수 <관습의 폭력성> <오로슬란> <블라인드>

문석 <보드랍게> <저승보다 낯선> <비디오포비아> <양치기 여성과 일곱 노래> <미끼>

문성경 <이사벨라> <이상한 나라의 펠릭스> <매기의 농장> <플레이백>(단편)

글 김성훈·사진 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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