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선정작 발표
2021-03-12 09:00:00

한국경쟁 출품 본선 진출작 발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작품 공모에 소중한 작품을 출품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올해는 8편의 극영화, 2편의 다큐멘터리가 선정되었습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에서 상영될 작품을 아래와 같이 선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한국경쟁 부문 선정작 (가나다 순)

1) <낫아웃 NOT OUT> (이정곤)|Korea|2021|108min|DCP|Color

2) <너에게 가는 길 Coming to you> (변규리)|Korea|2021|93min|DCP|Color

3) <복지식당 Awoke> (정재익, 서태수)|Korea|2020|97min|DCP|Color

4) <성적표의 김민영 Kim Min-young of the Report Card> (이재은, 임지선)|Korea|2021|94min|DCP|Color

5) <열아홉 Nineteen> (우경희)|Korea|2020|85min|DCP|Color

6) <인플루엔자 Influenza> (황준하)|Korea|2021|73min|DCP|Color

7) <첫번째 아이 First child> (허정재)|Korea|2021|93min|DCP|Color

8) <코리도라스 Corydoras> (류형석)|Korea|2021|87min|DCP|Color

9) <혼자 사는 사람들 Aloners> (홍성은)|Korea|2021|89min|DCP|Color

10) <희수 The train passed by> (감정원)|Korea|2021|75min|DCP|Color

‘한국경쟁’ 심사평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출품된 108편 중 상당수는 세상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온 한국 독립영화다운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뤘던 2021년 출품작 중 우선 눈에 띈 것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영화들이었습니다. 특히 <복지식당>과 <코리도라스>는 그동안 한국영화가 자주 다루지 않았던 장애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복지식당>은 한국 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고난을 재기라는 주인공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교통사고로 심한 장애를 갖게 된 재기가 ‘중증 장애인’ 판정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안타까움과 함께 장애인 관련 제도의 심각한 문제점을 알게 해줍니다. 게다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스태프와 출연진 들이 만든 덕인지, 이 영화가 폭로하는 장애인 등급제의 모순과 장애인이 장애인을 착취하는 장애인 사회 내부 풍경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코리도라스>는 장애인이자 시인인 남성 박동수 씨의 삶을 조용히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입니다. 23년 동안 장애인 시설에서 힘겹게 살아왔고, 그곳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삶을 꾸리는 한 ´사람´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사지를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그가 발끝을 이용해 시를 쓰거나 관상어인 코리도라스를 감상하는 모습이 주는 감흥은 가볍지 않습니다. 주인공을 대상화하지 않는 태도 또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너에게 가는 길>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소수자인 성소수자와 그 부모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트랜스젠더인 한결과 그의 어머니 나비, 그리고 게이인 예준과 어머니 비비안,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이 영화는 LGBTQ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배타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소수자와 비소수자 간 대안적인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또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상은 놀라운 감동을 안겨줍니다. 특히 변희수 전 하사의 비극을 경험한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의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하겠습니다.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여러 문제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코로나 시대 속에서 더욱 늘어가는 ´홀로족´의 삶을 반영하는 매우 시의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 소재를 소비하기보다는 현대 한국 사회 삶의 한 구석을 예리하게 도려내는 날로 사용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진아가 겪는 섬뜩하고 모진 순간들은 결국 보는 이들의 고독감 또는 공포감으로 증폭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 아이>는 여성, 그중에서도 첫 아이를 낳은 기혼 여성 정아의 삶을 따라갑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겠다는, 대한민국 여성의 평범한 욕망이 사실은 실현되기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영화는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정아는 보모라는 존재를 또 한 명의 여성으로 깨닫게 되는데, 이는 이 영화가 통속적 이야기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입니다. <인플루엔자>는 한때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간호사들의 ´태움´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간호사들이 왜, 어떻게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드러냅니다. 태움으로 괴로움을 겪던 주인공 다솔이 신입 간호사 관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은 모든 작은 사회에 드리워진 권력의 그림자를 보여줍니다. <희수>는 사회 문제를 표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산업재해를 커다란 배경으로 놓고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노동자로서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한 여성의 파리한 흔적을 좇는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간결한 표현을 통해 지나칠 수 없는 성취를 이뤘습니다. 독립영화계 최고 스타 중 하나인 공민정의 연기 또한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낫아웃> <열아홉> <성적표의 김민영>은 ‘울렁벌렁’거리는 청춘의 삶을 담아낸 영화들입니다. <낫아웃>의 주인공은 고교야구 유망주인 열아홉 소년 광호입니다. 프로야구 선수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못해 상처받은 그는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꿉니다. 광호가 대학에 가려고 하자 고교 감독은 뇌물을 은근히 요구하고 동료들은 등을 돌립니다. 영화는 이제 어리석은 짓을 벌이는 광호의 울퉁불퉁 삶을 쫓아가게 됩니다. <열아홉>의 주인공도 제목 그대로 열아홉 소녀 소정입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그는 엄마의 사망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겪게 됩니다. 만약 엄마의 죽음이 알려지면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며,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집에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정은 뜻밖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성적표의 김민영> 속 두 소녀 정희와 민영의 이야기도 열아홉 고3 때부터 시작합니다(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는 열아홉 살들은 이야기의 씨앗도 많이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삼행시 클럽´이라는 모임을 통해 끈끈한 우정을 이어 왔던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대학생 민영과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백수 정희가 서울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 영화는 두 친구의 오밀조밀한 관계의 거미줄을 독특한 감성으로 수놓듯 보여줍니다.

지난 한 해가 코로나 19 사태로 점철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지 않았던 것은 의외의 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팬데믹 사태 또는 팬데믹 시대를 영화로 옮기기에 우리의 준비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 팬데믹 사태가 기존에 존재하던 우리 사회의 모순을 더욱 불거지게 했고, 이 사실이 이미 올해의 영화들 안에 반영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년 영화들에는 팬데믹 사태가 더욱 명징하게 드러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여성의 삶을 소재와 주제로 삼은 영화가 지난해에 비해 놀랍게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양한 여성 문제를 다양하게 녹인 영화가 즐비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출품작 중에는 여성을 다룬 영화가 많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사이 한국 여성의 처지가 극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더욱 많고, 좋고, 힘 있는 ´여성영화´가 만들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들을 계속 전주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팬데믹 사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들어 저희에게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프로그래머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