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둔 어느 겨울, 일본 북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 마을 카이탄의 일상을 절묘하게 담아낸 작품. 조선소 폐쇄로 직장을 잃게 된 남자와 그의 여동생의 이야기, 재개발을 위해 집을 비워달라는 남자의 요구에도 끝까지 버티는 노파의 이야기, 천문관에서 일하는 남자와 밤일을 나가는 그의 아내의 이야기, 마을에 가스공급을 하는 남자와 히스테릭한 아내, 그리고 그의 아들의 이야기, 아버지와 서먹한 관계 때문에 고향에 들러도 집을 찾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 등 모두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는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기보다 각 인물들이 살아온 수많은 날들 중 하나였을 어느 겨울날의 한 단면을 담담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천문관에서 일하는 남자와 별을 좋아하는 소년이 만나는 장면을 제외하면 각각의 에피소드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고리는 거의 없지만, 영리하게도 감독은 마을의 커다란 이슈들, 예컨대“구조조정과 현대화를 위해 카이탄 조선소를 폐쇄합니다.”라는 뉴스, 새로 들어설 쇼핑몰에 대한 엇갈린 이해 관계 등과 그들이 함께 살고 있는 공간을 두드러지게 표현해 줄 지표들 - 어느 집 앞이나 한 가득 쌓여 있는 눈 뭉치, 멀리서도 보이는 조선소의 크레인, 마을을 지나다니는 트램 등 - 을 슬며시 각각의 에피소드에 삽입함으로써 마치 퍼즐 조각마냥 각각의 에피소드를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이 편린들을 통해 감독은 작은 어촌 마을에까지 들이닥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의 씁쓸한 정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군상들이 느끼는 외로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배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