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의 린
말을 지운 말의 길에서 말의 시간을 기억해 본다. 아무나 타지 못했던 말, 권력과 폭력의 중심에 있어야 했던 초식동물, 운동과 노동의 경계에서 때로는 존재가 저항이 되기도, 체제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 말 위가 아닌 말 아래의 사람들이 보낸 긴 시간. 말의 귀와 입을 빌려 감각해 본다. 흐릿하지만 넓은 시야, 멀고 가까운 지나가는 혼잣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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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의 린>은 말(馬)에 관한 말(言)을 담은 영화다. 이런 말장난이 가능할 정도로 이 영화는 말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풀어놓는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원우 감독이 2010년 서울 청계천에서 ‘깜상’라는 이름의 말을 우연히 접하면서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말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계기를 통해 발전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감독은 영화 속에서 다채로운 질문을 던지고 상념에 빠진다. 인간의 이동 수단과 길, 이동의 권리, 말의 노동과 노동의 윤리, 운동과 노동의 관계, 말과 인간 남녀가 차별적으로 맺어온 관계 등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옵티그래프>(2017)처럼 이 영화는 고전적 내러티브 없이 비선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산만하게 주제의 주변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주제의 확장과 집중을 반복하면서 특정한 논지에 다가간다. 이 영화의 핵심적인 말(言)을 꼽는다면 다음의 두 구절이 될 것이다. “착취하지 않고 구속하지 않고 제거하거나 분리하지 않으며 공존할 수는 없을까?” “예민하고 다정한 이들의 약함이 대대손손 생존할 수 있기를.” 다시 말장난을 하자면, 결국 <오색의 린>은 말에 관한 말이면서 말에 관한 말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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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Wonwoo⎜wwooy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