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같은 몰골의 한 미친 소녀가 공사판에서 일하는 부랑자 장을 따라다닌다. 장은 소녀에게 온갖 학대를 가하지만, 소녀는 장을 오빠라 부르며 좀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어머니를 잃고 시체들과 함께 실려 가다 탈출한 충격으로 광인이 된 소녀는 그 상태에서도 서울에서 내려온 오빠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시절, 자신이 즐겨 부르던 김추자의 '꽃잎'을 기억한다.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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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은 개봉하던 1996년 당시에도 충격이었지만, 거의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보는 데도 충격을 준다. 1996년의 충격은 장선우 감독에 관한 것이었다. 이미 문민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주류 영화계에서 80년 광주를 돌아보기 꺼리던 그 시절 '시대의 문제아' 장선우 감독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광주를 정면돌파했다. 한 소녀를 시대와 권력의 희생양으로 묘사하는 이 영화는 소녀를 궁극의 고통으로 몰고간 이후, “혹시 찢어지고 때 묻은 치마폭 사이로 맨살이 행여 당신의 눈에 띄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 주십시오”라는 말로 시작하는 설경구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꽃잎> 속 소녀의 고통은 보는 이의 아픔으로 전이된다. 장선우 감독이 아니었다면 당시 이처럼 과격하게 광주라는 사안에 접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흐른 뒤 다시 보는 이 영화에서는 여리디 여린 배우 이정현에게 마음이 사로잡히며 새로운 충격을 받게 된다. 오로지 열다섯의 나이로 민중 또는 시민을 상징하는 존재를 연기하던 그녀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 '연기천재'는 왜 몇 년 뒤 가수로 업종을 바꿨을까. <꽃잎>은 여전히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걸작이며, 이정현의 그 지분의 절반을 차지하는 게 확실하지만, 당시를 돌아보는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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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JANG Sun-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