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성이라는 가치에서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이점을 지닌다. 단편영화 특유의 순발력은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지금 당장의 사회와 사람들과 관심사를 담아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단지 매끈한 완성도를 넘어서는 발상과 전개를 가졌으며, 실험 정신을 보여 주거나, 충분히 말해지지 않았던 고통에 주목하는 영화들이 올해 출품작 중에서 여럿 눈에 띄었다.
가장 눈길을 끈 점은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품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같은 문제를 겪은 가족, 사회 구성원, 연인 사이에도 벽이 있음을 보여 주며, 그 벽을 넘기 위해 이해를 도모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사람 사이의 다름과 이해 불가능성을 받아들일 때에야 상대의 말을 듣고 행동을 살피고 손을 맞잡는 일이 가능하리라는 신중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영화 속 인물들은 단독자로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여성과 사회적 안전망 바깥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주를 이뤘다. 특히 그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해 성적 지향, 장애, 가족과 공동체, 인권 감수성, 성폭력을 비롯한 이야기를 영화 속으로 끌어오는 연출자의 사려 깊은 시선에 심사위원들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40분 이내라는 제한된 시간으로 윤리적인 시선을 견지하며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시도한 영화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한국영화에 거는 기대 역시 커졌다.
애니메이션은 작업 방식과 내용이 합치되는 작품이 많았다. 소박하게 일상을 그려 낼 때 정교하게 구사되는 사운드와 이미지 그 자체로 강렬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심사위원의 호평을 받았다. 실험영화 또한 언어를 경유하지 않고 어떻게 관객과 소통할지, 그 방식에 도전한 작품들이었다. 공포라는 장르로 현실의 들끓는 갈등과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들도 있었다.
한 가지 장르로 특정해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들도 있었고, SF와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은 때로 코로나19의 풍경과 겹쳐서, 또는 애니메이션의 기법과 합쳐져서 표현되기도 했다.
경향이라고 표현했지만, 모든 영화가 각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풍성한 이미지와 사운드, 전개를 예측하려는 시도를 불식시키는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려주는 동시에 적절한 분량과 형식에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을 선정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단편영화의 미학 안에서 2021년을 기억하게 할 영화적 체험이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한국단편경쟁 예심위원 김미조, 신동민, 이다혜, 이은선, 차한비, 허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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