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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당신이 있는 곳
2021-03-26 11:00:00Hits 191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03-26

당신이 있는 곳
[함께 읽는 영화] 박근영 감독 <정말 먼 곳>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전주와 인연이 깊은 영화를 꼼꼼하게 읽어 보는 시간, 오늘 비정기 코너 '함께 읽는 영화'에서는 박근영 감독이 연출하고 강길우, 홍경, 이상희, 기주봉, 기도영, 최금순 배우가 출연한 <정말 먼 곳>을 소개합니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한국영화 예매율 1위, 개봉 첫날 독립영화 좌석 판매율 1위를 차지하는 등 웰메이드 한국영화로 호평받고 있는데요. 물론,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이기도 하죠. 😋

지난 3월 16일 공개한 이화정의 전주가오디오 66회를 청취한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강길우 배우가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을 낭독하는 것으로 오프닝을 장식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작품이 시인 현민(홍경)의 시로 등장하는데요.

박근영 감독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는 말보다 이미지로 감흥을 주는 순간이 있어 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구상 단계에서부터 시와 영화의 만남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일까요? 작품을 쭉 감상하다 보면 시 「정말 먼 곳」에 담긴 정서가 영화 <정말 먼 곳>과 조응하여, 서사의 무게를 잡아 주는 일종의 누름돌로써 훌륭히 활용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 오늘 '함께 읽는 영화'의 해설자로는 한정원 작가를 초대했습니다. 한정원 작가는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라는 테마 시선집에 참여했고, 이후 에세이집 『시와 산책』을 통해 시와 산문 사이에 가교를 놓는 작업을 보여 주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정원 작가의 시선으로 읽는 <정말 먼 곳>👇

수평선을 하나 긋고 그 위에 세 개의 분기점을 표시한 다음, 왼쪽부터 차례로 '이곳' '먼 곳' '정말 먼 곳'이라고 적어 본다. '이곳'의 의미를 여기,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정할 때 그 기준점은 '나'이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이곳'의 위치는 달라진다. '이곳'에 있는 내가 '저곳'으로 이동하면 이내 '저곳'이 '이곳'이 되고, '먼 곳'의 위치는 다시 저절로 수정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꽁무니를 쫓듯 공간을 이동하는 행위는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데, 한 존재 혹은 개념에서 중요한 한 축이 공간이라면 나머지 축은 시간이고 언제나 더 크고 결정적인 힘은 시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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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들 
진우(강길우)는 떠나온 사람이다. 자신이 살던 서울에서 멀어지기 위해 화천의 목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나중에 동생의 딸임이 드러나는 아이 설(김시하)과 함께 살며, 목장 주인 식구들과 허물없이 지낸다. 단 자신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하면서. 그 이유는 친구 현민(홍경)이 역시 서울을 떠나 진우를 찾아오면서 드러난다. 둘은 서로 사랑한다. 그러나 다른 태도로 사랑한다.
진우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본래의 모습대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둘만 있을 때 그는 안정적이고 다정한 연인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다른 사람들 속에서는 혹여 현민과의 관계가 탄로 나지 않을까 눈치를 본다. 그에 비하면 현민은 같은 상황에서도 천진하고 스스럼없는 편이다. 

서울을 벗어나 '먼 곳'으로 온 이유 또한 다른데, 진우의 경우 자신의 성 정체성이 바깥세상과 불화하는 데서 오는 환멸 때문이었다면 현민은 여러 사정이 있더라도 결국에는 진우가 

'먼 곳'에 있으므로 서울을 떠난 셈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거리를 무화시키는 현민에게는 

'먼 곳'이라는 개념이 다른 층위로 바뀐다. 

'먼 곳'은 그대로 먼 곳이지만 그가 떠나는 행위는 외부의 혹은 자신 내부의 강요가 아닌 사랑의 추동이고, 그래서 그는 우호적인 환경 속에 있든 그렇지 않든 당당하다. 


진우의 떠남은 도피다. 그는 사실 자꾸 도망가는 사람이다. 새로운 공간에서는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을 거라고 끊임없이 기대하고,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같이 무너져버린다. 반면 현민은 대사로도 펼쳐놓듯 어딜 가든지 똑같은 상처가 존재한다는 체념을 지니고 있고 그 체념으로 오히려 중심을 잡는다. '욕심내지 말자'라는 말은 체념할 것은 어서 체념하고 남은 것들을 잘 보살피자는 뜻이었으리라. 

현민이 묻는다. 

"우리 어디 멀리 가서 살까?"
"멀리 어디?"
"아무 데나. 같이."

대사를 간략히 줄여 옮긴 이 대화에서 두 사람의 차이는 더 벌어진다. 현민의 말에서 계속 '우리' '같이' 같은 낱말이 언급되는 동안 진우는 그 '멀리'가 어디인지만 묻는다. 그가 마지막에 대답 없이 한숨만 쉴 때 거기 숨은 마음은 '또 떠나야 해? 정말 지겨워.'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진우는 현민의 말에서 가장 빛나는 마음을 간파하지 못하고 떠나보낸다. '나는 너와 함께라면 얼마나 먼 곳이든 가겠다'는 고백 말이다. 

떠나지 않는 사람들 
진우와 현민 그리고 진우의 쌍둥이 여동생 은영(이상희)이 계속 떠나오고 떠나가는 이들이라면, 반대편에는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바로 목장 주인 중만(기주봉)의 가족들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외지에서 화천으로 떠나왔다고 말하고 있다. 홀로 딸을 키운 것도 진우와 비슷한 점이다. 중만의 노모(최금순)는 치매를 앓고 있어서 병시중이 필요하고, 중만의 딸(기도영)이 그런 할머니를 돌보고 아버지와 농장을 꾸려 가며 독신으로 살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단단한 결속이 있어서 설사 어딘가로 떠나겠다는 생각을 누군가 한 적 있더라도 금방 힘을 잃었을 것이다. 

공간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시간은 떠날 수 없다. 시간의 힘이 더 센 것도 그 때문이다. 시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죽음뿐이다. 목장에서는 노모와 늙은 양이 그 방법으로 시간을 떠나는 동시에 공간에서 사라진다. 

내가 어느 공간에 있느냐가 중요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떠돌 수밖에 없다. 결점과 결핍이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어디에서든 나는 완벽하게 보호받지 못한다. 한편 시간에 기대는 사람은 어떤가. 강한 햇빛과 서늘한 어스름, 바람 소리가 날카로운 캄캄한 밤과 그럼에도 어김없이 밝아오는 아침, 갓 태어나서 비틀거리며 어미 젖을 찾는 새끼 양과 어느 날 문득 숨을 멈추고 땅 밑에 묻히는 늙은 양, 찬란한 가을 단풍과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들이치는 눈발을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노모는 식혜를 정성스럽게 끓일 때 마침 옆에 있던 은영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보면서 천천히 기다리는 거 중요해." 이 말을 은영뿐 아니라 진우와 현민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보면서 천천히 기다리기'는 시간을 버티어 내는 행위이다. 때때로 위로 떠오르는 불순물 같은 감정의 찌꺼기를 걷어 내면서 타인과 자신을 거듭 인정하는 과정이다. 중만과 중만의 딸은 그것을 깨우쳤고, 비록 이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들이 떠나지 못했다기보다 떠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고 받아들인다. 

리베카 솔닛이 전하는 윈투족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윈투족은 자기 몸을 가리키며 '오른쪽'이나 '왼쪽'이라는 단어 대신 동서남북 방위를 사용한다고 한다. 윈투족이 강을 따라 올라갈 때 산이 서쪽에 있고 강이 동쪽에 있고 모기가 서쪽 팔을 물었다면, 그가 거꾸로 내려올 때 산은 여전히 서쪽에 있지만 모기 물린 데를 긁으면 동쪽 팔을 긁는 것이 된다.*

이 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윈투족이 어느 공간에 있든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공간을 정의하지 않고, 공간과 나의 관계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읽는다. 공간 속에는 사람들이 살고 시간이 흐르니 곧 그것들과 나의 관계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며 수평선을 하나 그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이곳'을 두고 그 반대편에 '정말 먼 곳'을 두었다. 그 거리 구분을 다시 윈투족의 방식으로 바꾸어 본다. 내가 어디에 있든 진실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 그리고 당신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도 없고 당신도 없는 곳은 '정말 먼 곳'이 될 것이다. '정말 먼 곳'은 낙원이 아니다. '이곳'이 늙으면,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나와 당신이 닿아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종착지일 뿐.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반비(2018) 
한정원(작가)
시와 산책』을 썼다. 대학에서 시(詩)와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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