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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장애인 지원 정책의 사각지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2021-05-05 10:32:00Hits 30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장애인 지원 정책의 사각지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 <복지식당> 정재익, 서태수 감독



<복지식당>은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남자 재기가 장애 등급 심사를 받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휠체어와 주변 사람의 도움 없이 거동하기 불편한 몸인데도 그는 경증에 해당되는 5급 판정을 받는다. 5급은 새 출발을 바라는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영화 <복지식당>은 장애인이 된 재기가 일상에 복귀하려고 노력하지만, 모순적인 장애인 지원 제도 때문에 번번히 벽에 막혀 좌절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장애 등급 판정, 장애인 취업 지원, 장애인 대출 제도 등 여러 장애인 지원 정책과 제도들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이러한 제도들을 역이용하는 또 다른 장애인 병호를 통해 장애인들 간의 힘의 논리를 신랄하게 드러낸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장애인인 정재익 감독과 비장애인인 서태수 감독과 <복지식당>에 관해 나눈 대화를 전한다.


▲(왼쪽부터) 정재익 감독, 서태수 감독


장애인의 세계를 신랄하게 그려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정재익 외형적으로는 장애 등급 심사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고 싶었고, 더 나아가 비장애인은 알지 못하는 장애인 세계의 기득권과 소외 계층 간의 문제와 실상을 그려내고 싶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난 인연인가.
서태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단편영화 워크숍에서 정 감독님께서 수강생으로 참여하면서 인연이 생겼다. 정 감독님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글을 쓰셨는데 그 글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그가 쓴 글을 읽고 장애인 세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어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또한 제주에 있는 장애인들과 영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직접 목격한 일이기도 했다. 정 감독님과 함께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자고 했다.


영화 속 사건들은 실제로 경험한 일이라는 얘긴가.
정재익 사건의 80%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겪은 일이다. 장애인 일자리 지원 제도나 장애 등급 심사 제도는 겉으로는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운영되는 제도들인데 그 제도를 역이용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있다. 물론 지금은 과거보다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지원이나 혜택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서태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단편 워크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 감독님이 쓴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겪었던 일들이 비슷해 정 감독님이 쓴 이야기가 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다. 정 감독님은 자신의 경험이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생각했다.


정재익 감독은 왜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나.
정재익 직접 겪은 일의 부조리함을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나 여러 온라인 게시판에도 올렸는데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더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주인공 재기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장애인이 된 인물이다. 재기를 어떤 인물로 묘사하고 싶었나.
정재익 재기는 나 같은 후천 장애인이다.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사회적, 정책적 도움 없이 자립하기가 너무 힘들다. 재기를 통해 그런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태수 비슷한 생각이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려면 장애인으로서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분명 존재한다. 사회는 그들이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장치를 마련해줄 의무가 있는데, 그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일부 존재하지 않나. 그것을 알리고, 좀 더 나은 방식으로 개선해야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재익 이런 내용의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많은 장애인이 왜 장애인 세계의 불합리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냐고 반대하는 의견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덮고 싶어 하는 거다. 나 같은 경우 장애인 세계에서 약자라서 재기라는 인물을 통해 좀 더 알리고자 했다.


병호는 여러 장애인 지원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재기를 착취하는 인물인데.
정재익 병호는 장애인의 보호막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모르는 인물이다.

서태수 정 감독님이 실제로 만난 사람 중에 병호와 유사한 사람이 있었다. 정 감독님이 처음 쓴 시나리오에는 병호가 작은 에피소드 속 인물로 설정됐는데 그 인물을 좀 더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지금 영화 속 인물이 됐다.

정재익 어쩌면 병호 또한 과거에 재기와 유사한 사람을 살았을 것이다. 재기 또한 미래에는 병호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 사회 시스템이 사람을 그렇게 변하게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그 점에서 병호와 재기는 장애인 사회에서 가장 강자와 약자의 집합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서태수 비장애인 사회에선 재기와 병호 같은 인물이나 관계가 흔하게 존재하지 않나.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거다. 장애인 사회도 비장애인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왼쪽부터) 정재익 감독, 서태수 감독


두 분이 공동 연출을 하셨는데 역할을 어떻게 분담했나.
서태수 정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썼고, 내가 각색했다. 현장에선 재기 역을 맡은 조민상 배우와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 분들은 정 감독님이 맡았고, 나는 장면 연출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했다. 이렇게 역할을 분담하면서 17회차를 진행했다. 장애인 연기자들이 많이 등장하고, 촬영 일정이 빡빡했지만 정 감독님이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밤샘 촬영까지 함께했다.

정재익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직전이었는데 12월을 아주 뜨겁게 보냈다. (웃음)

서태수 특히 정 감독님이 장애인이 등장하는 공간이나 장애인을 연기할 배우 섭외는 신경을 되게 많이 쓰셨다.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난 재기가 자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높은 벽이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재익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모순과 문제점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세운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규정과 절차다. 규정이나 절차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규정이나 절차에도 사각지대가 분명 존재하는데 재기가 이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이고, 사각지대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또 하나는 장애인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이나 인권 침해 문제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기존의 영화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 없는 이야기인데 부담이 되더라도 이 문제를 얘기해야 가치가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두 분은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드셔야 할 것 같다.(웃음)
정재익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를 영화로 만들어야 세상에 계속 알리고 싶다. 서 감독님과 약속한 게 앞으로 세 편까지 같이하기로 했다. 일단 내가 영화감독으로 자립하는 과정들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

서태수 부산에서 영화를 시작했다가 제주 출신인 아내를 만나 제주로 이주하게 됐다. 뭘 하면서 살까 고민하다가 할 수 있는 일이 영화밖에 없었다. 마침 지인의 권유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영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정 감독님을 만나게 됐다. 정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제주의 젊은 감독들의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다. 영화 제작 기반이 없다시피한 제주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 받아 너무 행복하다.

정재익 전주가 장애인인 내가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군산공항에 리무진 콜택시를 보내주셨다. 따뜻하게 배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글 김성훈·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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