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2021-05-08 11:00:00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 한국경쟁 심사위원 특별언급,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너에게 가는 길> 변규리 감독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의 두 주인공은 자녀의 커밍아웃 이후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FTM 트랜스젠더 한결의 엄마 나비’, ‘게이 예준의 엄마 비비안’으로 소개한다. 나비는 한결의 성별 정정을 위한 법적 절차를 함께하고, 비비안은 예준의 남자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이 모든 과정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이 있다. 이 모임의 멤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사이. 그들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며, 공부했다. 그들의 발자국이 모인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진모터스가 후원하는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고, 한국경쟁에서 특별언급되었다. 변규리 감독은 “이 영화가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전달했을 때 집안에 경사난 것처럼 좋아해주셨던 것이 생각난다”며 영화에 도움을 준 출연자들과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활동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이 영화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길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이며 영화에 새겨진 희망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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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부모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2016년, 연분홍치마 활동 중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홍보 영상을 만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자식 이야기를 터놓는 그들의 언어와 표정이 마음에 깊게 남았다. 그 과정에서 연분홍치마와 성소수자부모모임이 부모모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대화를 나눴다. 그즈음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 친구가 겪은 일도 영향을 미쳤다. 그 친구의 또 다른 성소수자 친구가 사회적 차별 끝에 자살하는 일이 있었는데, 친구가 조의금 봉투에 단체명을 적을 수 없었다는 거다. 고인의 어머니가 자녀의 성정체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무척 가슴이 아팠다. 성소수자 부모의 위치 또한 성소수자 담론의 한 이슈로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결의 어머니 나비, 예준의 어머니 비비안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우선 영화 속 자녀들의 정체성이 다양하길 바라서 두분을 모셨다. 두분이 워낙 말씀을 잘하고 위트가 있어서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이 자녀와 맺는 관계도 흥미로웠다.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관으로 살아왔대도 지금의 부모 세대는 성소수자 이슈를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다.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재정립하면서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영화가 세상에 나오면서 한결, 예준씨는 공개적인 커밍아웃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들과 그 가족에게 촬영 동의를 구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매월 둘째 토요일에 성소수자부모모임의 정기모임이 있다. 1년 넘도록 우리 팀이 그곳에 가서 사전 조사를 했다. 부모님들이 온갖 고민과 갈등을 쏟아내고 공유하는 곳이기에 나도 그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달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회원들과 가까워졌다. 다행히 나비님은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하다며 촬영에 호응해주셨고, 한결도 성별정 정 과정에 우리가 동행하고 싶다고 했을 때 기뻐했다. 비비안님은 처음엔 사적인 이야기를 찍는 데 부담을 느꼈다. 그러다 점점 카메라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덕분에 본인의 인생이 정리되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나중에는 영화에 관한 이런저런 제안도 하셨다. 내가 그들을 설득했다기보다 같은 공간에 머무르면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환영해준 게 아닐까 싶다. 운이 좋았다.

영화에 부모모임 세미나 장면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들이 둘러앉아 자녀와 자신을 소개하는데, 퀴어 정체성을 설명하는 용어들을 헷갈려서 함께 웃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서로의 상황에 깊이 공감하고 있기에 그런 실수에도 건강하게 웃을 수 있는 것 같았다. 1년 이상 그들과 함께하며 느낀 특별한 점이 있다면.

신규 회원으로 온 부모님들은 눈물을 참 많이 흘린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방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들이 서로의 또 다른 가족이 되어주는 모습이 재밌었다. 주말에 쉬고 싶을 법도 한데 새벽까지 대화를 하고, 워크숍에서도 자지 않고 수다를 떠는 부모님들을 보며 마치 그들만의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자녀에 대해 더 알아가기 위해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또 다른 가족이자 학교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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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보기 힘든 장면도 있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든 중년 남성이 30초 정도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자리에 나온 이유를 이야기한다. 그가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현장을 그대로 담은 까닭이 궁금하다.

당시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한 부모님이 먼저 그 남자 분을 향해 혐오 발언을 멈춰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는데도 그분이 멈추지 않아서 카메라로나마 부모님 곁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내 카메라를 응시하더니 자기 할 말을 쏟아내는 거다. 그 사람도 자기 자식을 지키기 위해 퀴어축제를 반대한다고 말하는데 너무 아이러니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양측 모두 자기 자식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팽팽히 부딪히는 순간이 충격적이었다. 그 아이러니를 마주할 수 있는 장면이 그대로 들어갔으면 했다.

혐오의 시선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주인공들의 심정도 영화에서 들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관련 이슈가 터져나온 민감한 상황에서 인물들의 속내를 듣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트랜스젠더 합격생이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보도된 후 나비님이 처음으로 먼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연락하셨다. 그때 본인의 불안, 공포, 두려움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결이가 나중에라도 영화를 보고 엄마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질문을 할 때 그저 지금 그가 어떤 상황에 있는 건지를 물어봤다. 그렇게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카메라로 기록하며 기다렸다.

<너에게 가는 길>이 감독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앞으로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나.

이 영화를 만들며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함께 가능하게 만드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힘을 느꼈다. 바로 그런 공간, 공동체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도 이를 기억하며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재미있는 시도들을 많이 해보고 싶다. 또한 <너에게 가는 길>을 만들면서 헤맬 때마다 이혁상 PD, 조소나 PD가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 연분홍치마 스탭들에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글 남선우·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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