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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영화: 포루그 파로흐자드, <검은 집>
2021-09-30 11:00:00Hits 82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09-30

누가 검은 집을 만드는가
[함께 읽는 영화] 포루그 파로흐자드, <검은 집>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세계 영화사에 뿌리 내린 7인의 여성 감독, 그들의 작품을 돌이켜보는 시간! 

오늘은 『아이 엠 인디펜던트』 세 번째 특집 원고와 함께 인사드립니다. 이길보라 감독의 시선을 통해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검은 집>을 읽어보고자 합니다.

이길보라 감독은 한국의 영화감독이자 논픽션 작가로, 현재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분이지요.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임과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던 포루그 파로흐자드와 이길보라 감독의 교통 가능성을 점쳤던 첫 번째 이유가 실은 여기에 있겠는데요.

사진을 클릭하시면 〈검은 집 The House is Black〉 트레일러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농인 부모님과 함께 성장한 자녀를 의미하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로서의 정체성을 작업의 중요한 주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 또한, 이길보라 감독이 <검은 집>과 특별히 공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했습니다.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통해 미루어 짐작컨대, 사회적 약자에 관한 문제에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섬세한 통찰을 보여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길보라의 시선으로 만나는 <검은 집>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길보라의 시선으로 읽는 <검은 집>👇

'한센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소록도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던 명문고 학생의 수기가 떠오른다. 

나병이라고도 불리는 한센병 감염자들은 일제강점기 때 땅끝 아래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고립됐다. 1917년부터 섬 안에 위치한 병원에 수용되었다. 1941년에는 6천 명이 살기도 했다. 한센병은 나균과 나종균이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손끝, 발끝과 같은 신체의 말단이 감염되어 썩어 문드러지는 병이다. 체력이 약해지고 시력이 악화되기도 한다. 전염성이 있는 이 병을 사람들은 문둥병이라 불렀다. 감염자를 향해서는 문둥이라고 비하했다. 성경에서도 문둥병 환자가 종종 등장한다. 죄를 저질러 신으로부터 벌을 받은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예수님은 가엾게 여겨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 

그 맥락과 상통하는 체험 수기였다. 학업에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멀고 먼 소록도에 방문해 봉사활동을 했고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용감하다, 차별에 맞서는 행위다, 정의롭다고 말하며 칭찬했다. 그 어디에도 한센병 감염자들의 얼굴은 없었다. 


영화 <검은 집>에는 수많은 한센병 감염자의 얼굴이 등장한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을 다룬다. 어두운 집안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1월, 2월, 3월, 4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읊는다. 별 의미 없이 같은 공간을 왔다 갔다 한다. 삼삼오오 모여 배식되는 식사를 받는다. 간호사의 팔에 이끌려 진료실로 간다. 굽어지는 손가락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 손가락을 편다. 의사에게 발을 내밀어 발의 상처를 소독한다. 문드러져 시력을 잃은 눈으로 앞을 바라본다. 음악에 맞춰 북을 친다.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흙탕물을 튀기며 축구를 한다. 환하게 웃는다. 즐거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한다. 무리 지어 서 있는 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삶이다.

<검은 집>이 촬영된 존재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들이 재현물의 주체인 것을 확인해 주기 위한 또 다른 방법들 중의 하나는 
그들의 사유를 촬영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 영화는 벽 위에 남겨진 아주 경이로운 낙서들을 필름에 담는다. 
"천국은 닫혀버렸고, 나는 이 세상에 떨어졌다." 
"나는 떠날 거야. 내 심장은 눈물로 가득 찼다. 오 형제들이여, 오늘 밤 나는 슬프다." 
*니콜 브르네, 「창가의 여자―포루그 파로흐자드의 <검은 집>」 

22분 길이의 단편 영화는 1962년 이란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인 이 영화는 60년대의 관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개방적이고 평등하다. 한센병 감염자의 상처를 길게 보여주며 동정을 유발하지 않는다. 혐오의 감정을 품을 새도 주지 않는다. 그 어떤 감정도 쉽게 진입할 수 없도록 빠르고 경쾌하게 장면을 바꾼다. 대상화의 오류에 빠지기 전에 시선을 내부에 굳게 붙든다. 

누군가의 일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자칫 값싼 동정과 연민이 되기 쉽다. 감독은 담담히 그려낸다. 불쌍하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으며 아름답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날들이다. 다른 누군가처럼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며 정갈한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선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노는 시간이라고 킥킥대며 대답한다. 추한 것은 무엇이냐 묻자 손, 발, 머리와 같은 신체를 꼽는다. 문드러진 나의 몸, 나와는 절대 분리될 수 없는 신체에 타인으로부터 온 혐오와 동정, 연민의 감정이 내려앉는다. 바깥의 의미가 내재된다. 몸은 순식간에 추함의 대상이 된다. 추함이 깃든다.  


누가 추함을 만드는가. 무엇이 검은 집을 만드는가. 검다는 것은 무엇인가. 검다는 관념 안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가. 영화는 계속해서 질문한다. 당신과 내가 위치한,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문이 열린다. 내내 안쪽에 있던 카메라는 바깥으로 밀려난다. 추함과 혐오, 동정, 연민, 검은 집의 위치가 전복된다. 

이길보라(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연출한 영화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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