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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영화: 스르단 고루보비치, <아버지의 길>
2021-10-05 11:00:00Hits 71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10-04

이기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투쟁
[함께 읽는 영화] 스르단 고루보비치, <아버지의 길>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의 <아버지의 길>이 9월 30일, 지난주 목요일에 드디어 개봉했지요! 

혹시 주말 사이 극장엘 다녀오신 분 계실까요? 작품 어떻게 보셨는지 한번씩 여쭙고 싶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접한 관객 반응은 "세르비아의 암담한 풍경을 자식을 되찾고자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현*우, 다음영화)" "거친 빵과, 1.5리터 물병, 모포 한장빈곤과 부성애를 다룬 로드무비(jin2****, 네이버영화)" "제2의 다르덴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wood****, 네이버영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작품(스콜세지, 익스트림무비)"와 같이, 감사하게도 호평 일색이었는데요.

오늘 레터는 중앙일보 나원정 기자와 함께 <아버지의 길>을 읽어보는 시간으로 꾸몄습니다. 나원정 기자는, 워낙에 유명하신 분이라 이렇게 소개를 드리는 게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영화 월간지 <스크린> 에디터로 시작하여 <무비위크> <맥스무비 매거진> <매거진M>에서 영화 전문 기자로 일해온 분입니다. 현재는 팟캐스트 <듣똑라>와 KBS라디오 등을 통해서도 만나보실 수 있지요.

이미 관람을 마치신 분께도, 아직 관람을 염두에 두고 있을 뿐께도 유의미한 '함께 읽기'가 될 듯싶습니다. 나원정 중앙일보 기자의 시선으로 읽는 <아버지의 길>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나원정 중앙일보 기자의 시선으로 읽는 <아버지의 길>👇

가난 탓에 아이들의 양육권을 빼앗긴 세르비아인 아버지가 300㎞ 넘는 거리를 두 발로 걷는다. 수도 베오그라드에 가서 정부에 직접 호소하기 위해서다. 


세르비아 사회파 거장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아버지의 길>은 작은 시골 마을 노동자 니콜라의 가족 되찾기 여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무비다. 서울에서 대구까지가 300㎞ 정도이니 걷기엔 대단히 먼 거리다. 니콜라는 어쩌다 이런 대장정을 결심했을까. 영화 첫 장면에 제시되는 그 계기가 충격적이다. 

흙먼지 날리는 쇠락한 공장에 절망한 표정의 어머니가 어린 자식들을 이끌고 나타난다. 바로 니콜라의 아내다. 그녀는 공장에서 부당 해고당한 남편의 밀린 월급과 2년치 퇴직 수당을 주지 않으면 아이들과 함께 분신하겠다고 항의한다. 책임자인 소장은 나와보지도 않고, 아마도 남편과 비슷한 처지일 공장 일꾼들이 체념한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지켜볼 뿐이다. 결국 니콜라의 아내는 작은 물병에 담아온 휘발유로 몸을 적시고 스스로 불길에 휩싸인다. 그 광경을 함께 데려간 어린 아들·딸이 울먹이며 목격한다. 

외딴 산속에서 일용직 벌목일을 하던 니콜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두 발로 뛰어오지만 땀에 젖은 그를 맞이한 것은 사회복지과가 데려가버린 아이들의 빈자리다. 


놀랍게도 한 세르비아 남성의 실화에서 출발했다. 첫 장편 <빗나간 과녁>(2001)부터 '유럽의 화약고' 세르비아에 내전이 오랜 세월 드리운 가난과 부패를 그려온 고루보비치 감독이다. 어느 날 그는 부패한 사회복지관에게 아이들을 빼앗긴 남성이 항의의 표시로 고향에서 수도까지 200㎞를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으로 접하고 노동부에서 시위 중이던 이 남성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곤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가 그 남성에게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의지와 용기, 그리고 스토이시즘(감정을 억압해 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운명을 감수하는 인생관)과 같은 태도였단다. 실제 사건에선 초반 설정만 따오고 나머지는 모두 새롭게 구상했다. 이 영화가 지난 4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을 때 *공식 인터뷰를 맡은 필자가 고르보비치 감독에게 e메일로 전해 들은 얘기다. 

고루보비치 감독은 니콜라의 여정을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완수가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투쟁"에 빗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시지프)는 속임수를 써서 신에게 대적하다, 저승에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올리기를 영원히 반복하는 형벌에 처해진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산문시 『시지프 신화』에서 간신히 다다른 산정상에서 다시 내려와 똑같은 노동의 고통에 다시 뛰어드는 시시포스의 상황을 주목한다. 어쩌면 이런 종착점 없는 노동의 운명을 확실히 깨달을 때에야 우리는 그 운명의 부조리까지도 온전히 인식하고 껴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길>은 니콜라가 그러한 '자각'을 향해 나아가는 시시포스적 분투에 가깝다. 300㎞는 니콜라가 그런 자각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상징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 니콜라는 전쟁이 할퀴고 간 폐허의 밑바닥에 살아가는 극심한 빈부격차의 아래쪽 사람이자, 국가의 부속물로 휘둘려온 미약한 개인에 불과하다. 망연자실한 니콜라에게 경찰은 오히려 그가 아내의 분신을 부추기는 짓을 했느냐고 추궁한다. 사회복지관은 니콜라가 일용직인 탓에 일하는 곳을 몰라 아이들을 위탁가정에 맡겼다고 말한다. 복지관장은 니콜라의 아내의 자살 시도를 개인적인 것, 감정의 문제로 치부한다. 요금을 못 내 끊긴 전기와 수도를 복구해야 아이들을 돌려주겠다며 가난조차 그의 탓으로 돌린다. 니콜라는 복지장관의 요구를 맞추려 동분서주하지만, 자식들을 데려오지 못한다. 

니콜라가 비로소 집에 돌아간 장면에서 영화엔 가족의 집을 처음 보여준다. 낡았어도 아늑한 공간이다. 부엌 식탁엔 아내가 분신자살로 호소하러 집을 나서기 전, 빵부스러기로 허기를 달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니콜라의 아내가 아이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 절망하며 분신까지 하게 된 것이 정말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 탓일까.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삶이 니콜라의 탓일까.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훼손당하고도 대들지 못한 채 살아온 니콜라다. 권력자들이 둘러대는 잣대에 모종의 비리가 숨어있으리라 헤아릴 겨를 없이 그 창살 같은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만 발버둥 친다. 그러나 300㎞ 도보 여정이 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차비도 없을 만큼 빈곤한 니콜라가 생수통과 작은 빵만 꾸린 채 노숙을 거듭하는 이 길에서 그는 자신을 거부한 사회를 처음으로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이 막연히 기대어온 사회가 얼마나 관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자들의 탐욕으로 얼기설기 지어졌는지에 서서히 눈 뜬다. 이후 그가 마주한 정치가와 행정가들의 행태는 예전처럼 니콜라를 무겁게 짓누르는 대신 블랙 코미디에 가깝게 비춰진다. 카메라는 개입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한 발 떨어져 이 모든 시대의 풍경을 숨죽이고 기록한다. 

니콜라는 자신의 존엄성과 가족의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의 태도로 무장해야 하는지 자각해나간다. 이제 니콜라는 죄인처럼 주눅 들어있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돌아온 니콜라가 자신의 빈 집을 재건하는 '의식'에 가까운 10분여의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나 다름없다. 

니콜라의 그 형형한 눈빛 변화를 단단하게 표현해낸 주연 배우 고란 보그단도 빼어나다. 미국 TV 시리즈 '파고' 등 40편 넘는 영화‧드라마‧연극무대에서 활약해온 베테랑 배우로, 이번 배역을 위해 몸무게를 20㎏ 감량하고 이 '현대판 시시포스'의 여정을 마치 실존하는 삶처럼 스크린에 새겨냈다. 
나원정(중앙일보 기자)
극장 어둠 속이 가장 행복한 영화 기자. 영화와 사람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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