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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영화: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 세계
2021-10-28 11:00:00Hits 131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10-28

젠더와 계급이 교직하는 재현의 아름다움
[함께 읽는 영화]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 세계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이번 주 『아이 엠 인디펜던트』 특집은 이탈리아 다큐멘터리스트 체칠리아 만지니와 함께합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만지니 작품들의 특징을 몇 개의 단어로만 설명하라고 한다면, 저는 반드시 "생동"과 "생소"를 동시에 꼽고 싶은데요.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은 다큐멘터리의 원칙에 충실하여 그때 거기에 있던 사람과 풍경의 활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냅니다. 아주 정직하지요. 그런데 이와 동시에, 그의 카메라에 담긴 대상이 대단히 낯설고 고유한 것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목도하게도 됩니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영화 평론가인 다니엘라 페르시코는, 『아이 엠 인디펜던트』에서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 세계에 관해 설명하며 만지니의 작품이 "언제나 정치적 표현을 넘어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으며, 카메라를 매개로 그녀와 촬영 대상 간에 강렬한 교감의 순간이 창조되곤 했음을 뚜렷이 알 수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을 이해하고 교감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내게 완전한 미지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 세계를 해설해주실 분으로는 정희진 여성학자를 모셨습니다. 만지니에게 다큐멘터리를 찍는 일이 피사체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과정이었다면, 정희진 선생님에게는 글쓰기가 그런 역할이지 않은가 싶을 만큼 활발히 집필하시는 분인데요. 

1999년 출간되어 무려 2020년 3월까지 증쇄를 거듭한 『한국 여성인권운동사』의 편저자이며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2001) 『페미니즘의 도전』(2005) 『정희진처럼 읽기』(2014) 『아주 친밀한 폭력』(2016) 『낯선 시선』(2017)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2020)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2020)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2021) 등을 썼습니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혼자서 본 영화』(2018)가 있고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2019)에도 공저자로 참여하셨지요. 이밖에도 스무 권이 넘는 공저가 있는데, 여기에서 모두 소개하기에는 아쉽게도 지면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대신에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쓰는 일과 사는 것이 함께 가는 학자! 정희진 여성학자의 시선으로 읽는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 세계, 지금 시작합니다!

👇정희진 여성학자의 시선으로 읽는 체칠리아 만지니의 작품 세계👇

체칠리아 만지니*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초의 여성´이라는 클리셰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그녀의 포지션은 작품에 반영되어 있지만, 독특하고 흥미로운 그녀의 작품들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논쟁적인 사안에 예스라고 답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자로서 여성(주의자)으로서 그의 시각은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분열시킨다. 내가 본 6편의 작품, 한 컷 한 컷이 하나의 미술 작품(a piece)으로 어디든 걸어둘 만하다.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상탈 무페의 절합* 개념이 스크린에 펼쳐졌다고나 할까.

보이스 오버, 음악, 무음의 혼성은 화면의 육체성과 만나서, 관객에게 깊이 있는 ´가성비´를 선사한다. 소리와 화면이 합수(合水)한 공감각적인 화면은 편집이 필요 없는 빼어난 장편(掌篇)의 연속이다.
*Cecilia Mangini, 1927~2021
*切合, articulation

체칠리아 만지니, <습지의 노래>(1961)

데뷔작이자 청년들의 ´보잘것없는´ 일상을 담았지만 전복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미지의 도시>(1958)는, 그야말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준다. 로마 변두리 아이들의 일상적인 ´무서운´ 물놀이 <습지의 노래>(1961)는 폴 윌리스의 <교육과 계급의 재생산>을 상기시킨다. 젠더와 계급이 두텁게 교직(交織)된, 쉽지 않은 작업에 성공한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본 그녀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 모두 나이든 여성과 무직 청년, 소년이라는 점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젊은 여성이 없다. 우리가(내가) 흔히 본 여성주의 영화에서 여성은 어떤 여성이었던가를 질문하게 한다. 


체칠리아 만지니, <스텐달리 (스틸플레이)>(1960)

체칠리아 만지니, <마리아와 나날들>(1960)

다른 문화권 관객들이 보기에 너무나 흥미로운 장례식, 아들의 장례 의식을 다룬 이탈리아 남부 살렌토 지역의 문화를 묘사한 <스텐달리 (스틸플레이)>(1960)는 무대 위의 공연을 보는 듯하다. 자녀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잊기 위해(?) 필요한 몰입과 환각이 관객에게는 극한의 엑스터시를 제공한다. 사라질 위기의 ´축제(장례 의식)´는 제3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의 남은 자들(어머니)이 흔드는 격렬한 흰 손수건의 몸짓은, 관에 누워 있는 아들이 생환할 것 같은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화면은 작두를 탄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의 농가에 살고 있는 마리아는 ´여성 노인´이라는 상황을 지워버린 인물이다. 하루하루 삶의 의미로 충만하다. 시간이 그녀를 따라가기에 숨이 찰 정도로 작품엔 박진감이 넘친다(<마리아와 나날들(1960)>).

체칠리아 만지니의  영화는 무엇보다도 현대화로부터 소외되고 추방당한 이들에게 가시성을 부여하는 공간이자, 노인, 여성, 어린이에게 최우선으로 관심을 쏟으며 견고한 정치적 의도를 새겨 놓은 공간이다. (중략) 만지니 영화의 정치적 견해는 그녀가 자신의 작품을 ´신념 투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으로 규정한 데서 각별히 드러난다.
*다니엘라 페르시코, 「체칠리아 만지니―마지막 남은 이들의 시네마」

모든 작품이 인상적이지만 <목의 굴레>(1972), <여자-되기>(1965)는 어린이와 여성을 분석하려는 근대의 제도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선동적이고 아름답고 대단히 지적인 작품이다. 가정, 학교, 공장에서 억압받고 중노동이 시달리는 여성과 어린이의 목소리는 안락한 가정 이미지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불안감을 조성할 것이다. 

이 두 작품은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 정신분석의 결합이다. 하루 열 시간의 공장 노동. 이후에도 이어지는 가사노동에 탈진한 여성들은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히스테리컬한 엄마들이다. <목의 굴레>의 소년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없다. 이 남자 어린이와 세상사를 평범하게 보고 싶은 보통 사람들이 극 중에서 공존, 충돌하고 관객은 불편하다. 이 공존을 잡아내는 감독의 가치관이 이 작품들을 ´(소품이 아닌) 큰 영화´, 장편극(長篇劇)으로 느껴지게 한다. 

체칠리아 만지니, <목의 굴레>(1972)

<목의 굴레>에서 어린 소년 파비오의 사랑스러운 외모와 장난기와 달리, 그의 목소리는 부모와 학교 그리고 노동자 계층의 가족을 위협하는 강렬한 행위성을 갖고 있다. 작은 소년이 자본가의 가족임금제*를 붕괴시키려 한다! 필자가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번역된 영어에 의지하면, “bridle”은 고삐, 속박, 재갈을 물린다는 의미다. 말(馬)과 관련해 주로 쓰인다는 점에서, 말과 인간을 같은 선상에서 비유하여 현실의 가혹성을 배가시킨다.* 교사, 엄마에게 저항하는 소년 파비오는 이미 고삐 풀어진 조랑말(?)이고, 어른들의 호소를 압도한다. 

사회로 대표되는 극 중 교사 혹은 상담가는 이렇게 말한다. 파비오 같은 소년은 "성인이 되거나 혁명가 심지어 범죄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사회로부터 고립될 뿐"이다. "우리는 그런 아동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감독은 이 소년의 미지의 가능성과 함께, 파비오의 어머니가 처한 여성의 공사 영역에서의 버거운 이중 노동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갓난아이, 엄마, 소년은 모두 두려운 존재로 체제 폭발력을 갖고 있다. 
*family wage
*파비오의 목은 어디에?
*"from saints to revolutionaries, criminals"

체칠리아 만지니, <여자-되기>(1965)

<여자-되기>는 요즘 유행하는(?) 이론대로 ´주체적 종속´의 행위자로 살아가는 여성이 아니라 ´실제 그대로´ 집과 일터에서의 일상을 보여준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여성은 이렇게 산다. 당대와 달리(?) 약 50년 전의 산업 자본주의 시대보다 여성의 상황은 나아졌을까. 오히려 지금 여성들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부 젊은 여성노동자들은 20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월급의 몇 배에 해당하는 명품 가방을 사려고 백화점 앞에 줄을 선다. 지금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의 대중화는 여성운동의 성과일까. 나는 신자유주의의 어떤 틈새가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파열한 계급적 현상이라고 본다. ´서울 중산층 젊은 여성´의 이미지가 과잉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변하지만 동시에 변화하지 않는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의 주제는 ―거의 그렇게 읽히지 않지만― 가정폭력이다. 샤이닝의 마지막 장면, 연도가 다른 집의 역사가 담긴 사진에는 똑같은 남자가 나온다. 가부장제의 몰역사성, 이것이 현실이다. 체칠리아 만지니의 목소리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이제까지 내가 보지 못한 전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조지 오웰의 글쓰기의 목적이 온전히 실현된 걸작들이다. 최초의 여성 감독? 정치가 예술이 된 ´진짜 시초´가 아닐 수 없다.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와 글쓰기를 지향한다.혼자서 본 영화』등 아홉 권의 책을 썼다
한국 여성인권운동사성폭력을 다시 쓴다』의 편저자이며 그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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