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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영화: 바바라 로든, <완다>
2021-11-11 11:00:00Hits 83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11-11

여자에게 붙일 만한 수식어
[함께 읽는 영화] 바바라 로든, <완다>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라는 제목의, 줄여 써서 ´듣똑라´라 불리는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특히 유행이라고 하니, 아마 우리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는 분들께도 익숙한 이름일 것 같은데요. 혹시 들어 보셨을까요?

´듣똑라´는 오늘 바바라 로든의 <완다>를 해설해 줄 홍상지 기자가 운영하는 채널이기도 합니다. ´MZ 세대의 뉴스, 트렌드, 워크,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한다는 소개만 보아도 알 수 있듯, 무척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특징이지요.

저축이나 절약 방법, 주식, 비트코인, 부동산 투자와 같은 경제 이슈를 소재로 삼기도 하고, 청년 빈곤과 환경 오염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요즘 구직자의 주목을 받는 직장이나 직업을 깊게 파고드는 날도 있지요. 도서, 영화, 음악 이야기도 하고요. 

정말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혹은 ´똑똑해질 것 같은´ 화제들인데요. 이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 똑부러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알아야 할 것이 하고 많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똑똑하다´는 건 정확히 무엇을, 어떤 상태를 일컫는 걸까요? 우리는 왜 똑똑해지고 싶을까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오늘 레터의 중심 화제, <완다>의 주인공 ´완다´가 우리의 눈에 그다지 똑똑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오히려 너무 똑똑치 못해서, 세상사에 훌쩍 빗겨 선 이처럼 행동해서,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관해서조차 타인에게 그러하듯 둔감하고 냉담해서, 우리로 하여금 당혹감을 느끼게끔 하는 인물이지요. 

실제로 <완다>는 ´알마 멀론´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바바라 로든의 당혹감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또 그런 만큼 개봉 이래 많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고요.

사실은 이런 이유에서 홍상지 기자님을 <완다>의 해설자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기자로 일하며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지켜보았고, 글과 말을 도구로 세상의 ´똑똑함´을 다루는 분, 홍상지 기자의 시선에 ´완다´가 어떤 사람으로 비칠 것인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여러분도 저처럼 궁금하시지요?

홍상지 기자의 시선으로 읽는 바바라 로든의 <완다> 지금 시작합니다! :)

👇홍상지 기자의 시선으로 읽는 <완다>👇

가정에 무책임한 여자, 오는 남자 안 막는 헤픈 여자,
남자 말 잘 듣는 순종적인 여자, 자기 의견 없는 여자, 백치미 있는 여자 등등. 

사회가 ´완다´라는 여자에게 붙일 만한 수식어를 떠올려본다. 왠지 어디선가 한 번쯤 그를 본 것도 같다. 거리에서든, 드라마 속에서든, 뉴스 속에서든, 지인의 지인 이야기로든 말이다. 그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도대체 그 여자는 왜 그러고 사는 거야?´


영화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완다는 그렇게 시종일관 내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부인(완다)이 아침밥도 안 차려주고 어린 자녀 둘과 자신을 방치했다´며 법정에서 이혼을 요구하는 전남편에게 어떠한 항의나 반박도 없이 "판사님,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나, 술집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잠자리 후 남자에게 버림받지 않으려 도망가는 남자의 뒤를 허둥지둥 따라나서지를 않나.


그것뿐인가. 어디선가 지갑까지 털려 빈털터리가 된 완다는 강도질을 일삼는 남자 데니스를 우연히 만나 그와 일상을 함께 하게 된다. 데니스는 경찰을 피해 도주하는 와중에도 은행 금고를 털 야심 찬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에 완다도 동참하게 되는데, 데니스는 내내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로 완다를 대한다. 야밤에 원하는 대로 햄버거를 사 오지 않았다며 소리를 지르고 바지 말고 치마를 입으라고 강요한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고함을 지르고 손부터 올리는 그런 남자다. 운전 도중 거침없이 완다의 허벅지를 주무르기도 한다. 그래도 완다는 큰 저항 없이 그의 모든 행동을 받아들인다.


그렇다. 완다는 누구에게나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는 존재다. 일단 가부장제 옹호자나 여성혐오자의 시선에서 완다는 비난받기 딱 좋다. (그들 입장에서) 완다는 여성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모성과 현모양처의 길을 일찌감치 거부한 ´비정한 아내´이자, 초면인 남자를 단번에 따라나설 정도로 소위 ´헤픈 여자´니까. 반면 뚜렷한 직업 없이 경제권을 잃고 자신을 향한 남자들의 폭력에 무감각한 완다는 그 시대 대다수 여성의 현실이자 여성 인권 관점에서는 무지한 여자, 즉 ´각성이 필요한 상태´다. 게다가 돈 한 푼 없어도 크게 아쉬워하지 않는 완다는 그가 사는 거대 자본주의 사회 미국에서 딱 도태되기 쉬운 인물이다. 여기서 잠깐 완다와 데니스의 대사를 살펴보자. 


"돈이 없어요. 한 푼도.
 돈이 있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완다)

"바라는 게 없으면 아무것도 못 가져.
가진 게 없으면 맹탕이야. 죽은 거나 같지.
미국 시민도 아니야."(데니스)

"그럼 난 죽은 거네."(완다)


상당히 수동적이면서 미숙해 보이는 완다는 그와 동시에 어딘가 초월한 사람 같기도 하다. 완다의 특별한 점이다. ´가정을 뒤로 하고 처음 본 남자를 따라나서 범행에 동참하는 무일푼의 여성´ 완다는 온갖 잣대와 여성혐오로 가득 찬 폭력의 시선 따위에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움직인다. 대체 왜 그러고 사는지, 머물 집은 정말 없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완다 자신이 원하는 삶은 뭔지 궁금해하는 건 영화를 보는 나(우리)뿐인 것 같다. 어느 때에도 태연하기만 한 영화 속 완다에게 타인의 선 넘은 시선들은 다 상관없어 보인다. 

그녀는 대부분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고, 남성 캐릭터의 폭력과 모욕적 언사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속수무책이다. 자신 없는 목소리, 느린 움직임, 기운이 없는 몸짓은 완다의 수동성을 보여 주는 듯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오히려 기존 질서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 있다. 
… 그녀는 시스템 속에 길들여져서 ´정상인´으로 살기보다 차라리 사회가 보호해 주지 않는 거리로 나서기를 선택한다.
*문성경, 「나를 길들이려 하지 마세요―바바라 로든의 <완다>」

사회가 어떤 식으로 완다를 규정하려 해도 완다는 완다의 속도대로 현실과 마주하고, 완다의 속도대로 성장할 뿐이다. 그런 완다를 정확히 규정지을 한 마디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중 후반부쯤 완다는 데니스의 요구에 처음으로 강하게 거절해 본다. 데니스의 은행털이 범행에 동참할 때는 영화 내내 큰 감정의 동요나 표정 변화가 없던 완다의 살짝 흥분된 미소도 볼 수 있다. 차 안에서 자신을 겁탈하려는 남자에게 거세게 저항하며 차 밖으로 뛰쳐나가는 완다의 모습도 이전의 완다와는 다르다. 

완다는 그렇게 변화해 나간다. 허나 완다의 변화는 영화를 보고 있는 내가 바라는 만큼 충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영화는 나 같은 관객의 바람에 캐릭터를 맞추기보다는 영화 속 세상에서 실존하는 완다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많은 영화가 그래도 결말쯤엔 주인공에게 희망의 실마리 하나쯤은 던져주는 데 반해 이 영화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또 다른 낯선 상황에 완다를 떡 하니 던져둔다. 그래서 영화는 끝나도 완다의 여정은 스크린 뒤로 계속 이어질 것만 같다.


영화 <완다>의 감독 바바라 로든은 1960년 3월 신문에 실린 한 여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줄거리를 구성해 나갔다고 한다. 이름이 알마 멀론인 이 여성은 한 남자와 얽혀 은행 강도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남자는 현장에서 죽고 멀론은 법원에서 20년 형을 선고받는다. 멀론은 형을 내린 판사에게 ´잠자리와 음식이 제공되는 감옥에 20년 동안 가게 해줘서 고맙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로든은 ´멀론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에서 시작해 완다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그의 서사를 상상해본 것이다. 

거리에서든, 드라마 속에서든, 뉴스 속에서든, 지인의 지인 이야기로든 어디선가 본 듯한 현실의 완다에게 사회는 그를 규정할 이런저런 언어를 붙여 댄다. (우리는 유구한 역사의 ´OO녀´ 시리즈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만큼 한 여자를, 한 사람을 사회는 하나의 장면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쉽게도 재단해 버린다. 하지만 영화를 본 우리는 안다. 완다는 쉽게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여자라는 걸. 아니, 완다가 아닌 그 어떤 누구의 삶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장면, 하나의 사건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각자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고 그 여정 속에서 우린 각자의 속도로 계속 변화해 나가는 중일 테니 말이다.
홍상지(기자)
팟캐스트유튜브에서 듣똑라를 만들고 있다. 사회부 기자 오랫동안 일했다.
사회에서 쉽게 지워지는 존재들을 기억하고 콘텐츠로 이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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