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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영화: 안나 카리나, <비브르 앙상블>
2021-11-25 11:00:00Hits 46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2021-11-25

´홀로´가 아니라 ´함께´ 산다는 것
[함께 읽는 영화] 안나 카리나, <비브르 앙상블>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오늘은 『아이 엠 인디펜던트』 특집 마지막 원고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일곱 번째 작품, 안나 카리나 감독의 <비브르 앙상블>을 소개해줄 분으로 손희정 평론가를 모셨는데요. 

손희정 평론가는 『페미니즘 리부트』의 저자이자, 수전 팔루디가 쓴 『다크룸』의 한국어판 번역자로 유명한 분이지요. 2017년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넷페미史』 『그런 남자는 없다』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 등 여성학 관점의 공저서 다수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채널예스>에 실린 인터뷰 기사가 흥미롭습니다. 기사의 제목이 "사실은 영화전공자입니다"예요. 여기서 손희정 평론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여성학 전공자이거나 여성학자인 줄 아세요. 그런데 사실 여성학 전공은 아니거든요. 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했고 영화 비평을 하는 게 계속 꿈이었던 사람이에요."
 


손희정 평론가의 새 책,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는 그가 꾸었던 오랜 꿈의 일부인 셈입니다.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 이 책은 13인의 국내 여성 영화 감독, 김도영, 윤가은, 김보라, 장유정, 임선애, 안주영, 유은정, 박지완, 김초희, 한가람, 차성덕, 윤단비, 이경미와 손희정 평론가의 대화를 엮어 "여성 영화 유니버스"를 그려낸 인터뷰집인데요.

위의 기사를 보면 이 책을 읽고 "내 최애는 빠졌지만 책은 좋다" 혹은 "내 최애는 어디 갔냐"라 반응한 독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해 그는 "그만큼 다 못 담았다는 거고, 그런 걸 보면 저도 마음이 되게 좋"다고 평하는데요.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장편 영화를 극장 개봉한 여성 감독들"이라는 제한을 두고 인터뷰 대상자를 모색했음에도, 책 한 권이 품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여성 창작자와 여성영화가 탄생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겠지요. 

본론에 닿기까지 꽤 멀리 에두른 것 같습니다만,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손희정 평론가의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에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최애 작품´도 빠져 있거든요. 한번쯤 우리 최애는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쭤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돌아와 몹시 기쁩니다.

손희정 평론가의 시선으로 읽는 <비브르 앙상블>, 지금 시작합니다!

👇손희정 평론가의 시선으로 읽는 <비브르 앙상블>👇

"말하자면, 피그말리온 같은 거예요."

2016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안나 카리나가 한 말이다. 그는 "´고다르의 뮤즈´라는 말이 여성은 위대한 남성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편견에 기댄 진부한 평가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어떻게 영광스럽지 않겠어요?
 장-뤼크가 나에게 그런 배역들을 연기할 수 있는 선물을 준 셈이죠."

이 대화는 카리나가 고다르와의 협업 안에서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아쉬움으로 이어지거나, 혹은 고다르가 카리나의 위대한 스승이었다는 증거로 여겨지곤 한다. 나는 이 일화를 들을 때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장-레옹 제롬 Jean-Léon Gérôme(1824-1904),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Pygmalion et Galatée>, 1890년경.

키프로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여자들을 지극히 혐오한 나머지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다. 고립된 채로 조각에 몰두하던 그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이상형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 조각품과 사랑에 빠져 아프로디테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저 상아 처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게 해달라"고. 아프로디테는 그의 기도에 감복한다. 그렇게 해서 조각상은 생명을 얻는다. 

이 이야기는 꽤 끔찍하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소문자여성(women)의 고유함을 보지 못하고 자기 머릿속에 있는 대문자여성(Woman)의 스테레오타입에 사로잡힌 남성 아티스트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렸다. 조각과 사랑에 빠지건, 인형과 사랑에 빠지건, 그건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의 세계관은 지극히 여성혐오적이다. 

카리나의 평가는 고다르에 대한 존경의 뜻을 밝히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는 꽤 신랄한 비판일 수도 있다. 카리나의 1973년 작품 <비브르 앙상블>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덴마크 출신의 안나 카리나가 프랑스에 도착했던 때는 고작 17살 무렵이었다. 그녀는 우연찮게 사진 촬영장에서 만난 코코 샤넬에게 ´카리나´란 예명을 얻었다. 이후 장뤼크 고다르의 눈에 띄어서 단번에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이와 같은 실제의 에피소드를 정반대로 반영한다. 
*이지현, 「하나의 필름에 새겨진 생각―안나 카리나의 <비브르 앙상블>」

<비브르 앙상블> 제작 당시 카리나가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고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남자 감독을 데려오면 돈을 대겠다"는 제작사는 있었지만,  이 신진 여성 감독을 믿고 제작비를 댈 곳은 없었다.* 제작사 ´Societe Nouvel de La Cinematoraphie´ 덕분에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카리나는 일주일 만에, 자신의 집 등을 활용하면서, 촬영을 마쳐야 했다. 이렇게 어렵게 제작한 <비브르 앙상블>은 여러 의미에서
<비브르 사 비>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여자의 삶에 대한 영화"라고 소개되곤 하는 <비브르 사 비>*에서 카리나는 배우를 꿈꿨지만 현실에선 성판매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포주들 사이에서 거래되다 총에 맞아 죽는 ´나나´를 연기했다. 카리나는 고다르와의 결혼 생활에서 두 번의 자살을 시도했고, 그 중 두 번째는 이 결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처음 기획에서는 다소간의 ´해피엔딩´이었던 것을 고다르가 허망하고 비극적인 죽음으로 바꿔버렸고, 이것이 카리나의 마음을 해쳤다. 심지어 카리나는 이 자살 시도 후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가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고다르의 다음 영화 <작은 병정> 촬영 ´덕분´이었다. 카리나는 "나는 <작은 병정> 덕분에 살았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심지어 이미 스타급의 배우라는 인지도가 있었음에도!
*<비브르 사 비>(장 뤼크 고다르, 1997)


<비브르 앙상블> 역시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배우 지망생 쥴리의 인생의 한 시기를 따라간다. <비브르 사 비>와 마찬가지로 몇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장에서 쥴리는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강사 알랭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두 번째 장이 시작되면 두 사람은 격렬하게 서로의 육체를 탐색하는 중이다. 사운드로는 알랭의 친구가 쥴리에 대한 뜬소문을 알랭에게 전하는 소리가 흐른다. 


"진짜 매춘부래. 어렸을 때 뉴욕에 가서 집세 내주는 남자랑 결혼했다가 다음 달에 이혼을 했다나? 
영화배우가 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모델이 됐대. 하여튼 이상한 여자야.
그런 이상한 여자 때문에 실비*를 떠나진 않겠지? 마약도 한다던데."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실제로 파트너의 생활력에 ´기생´하는 것은 쥴리가 아니라 알랭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는 "그런 이상한 여자"란 남자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속에서나 "쌍년"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함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건 "세상에 섹슈얼리티를 자원으로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기생하는 여자가 없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대문자여성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상상이 어떻게 남성중심적인 예술가-비평가 네트워크 속에서 진리이자 예술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수없이 많은 소문자여성들의 실제 삶을 가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알랭의 아내


<비브르 앙상블>은 첫 만남에서 알랭에게 자신의 나이가 스물다섯이라고 거짓말하는 쥴리,* 마약에 취해 빈둥거리는 알랭과 달리 끝까지 판매원 일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하는 쥴리* 등을 통해 이 ´남성적 판타지´에 꼼꼼하게 코멘트를 단다. 

그러나 <비브르 앙상불>의 관심과 영화적 가치가 남성 중심적 영화문화에 대한 비판, 혹은 고다르에 대한 비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카리나는 이 작품을 통해 ´연인이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서 탐구한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여자가 산다는 것(Vivre Sa Vie)"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산다는 것(Vivre Ensemble)"이다. 뜨겁게 사랑하던 두 사람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혹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리하여 여자는 허망하게 죽어버리지 않고/살해당하지 않고 어떻게 끈질기게 파리에서 살아남는가. 카리나는 이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작품을 통해 바로 그 문제에 대해서 말한다.
*고다르는 <작은 병정>에서 "여자는 스물다섯에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브르 사 비>에서 나나는 너무 쉽게 레코드 판매원의 일을 그만두고 성판매의 길로 들어선다.

손희정(평론가)
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전공했다.
<여성괴물><다크룸>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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