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의 삶을 다룬 근래의 한국영화들 가운데 <비행>은 가장 어둡고 비참한 버전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범죄 장르 영화의 경계에 갇히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소재를 전하는 듯한 기록 영화적 질감으로 피할 수 없이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절망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이장>의 등장인물들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난과 전근대적 인습의 찌꺼기로부터 고통받고 있고 그것들을 돌파할 만한 현재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각자의 삶에 짜증을 내면서 거울과도 같은 다른 가족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다투고 할퀴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그들 각자의 존엄을 긍정한다.
<파도를 걷는 소년>은 대구를 무대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DJ의 절망을 다뤘던 <내가 사는 세상>은 주제의 직설성이 주는 효과 외에도 대구라는 도시 내부의 특정 지형을 담는 접근법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올해 네 번째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모두 한국영화이다. 한국독립영화가 기나긴 동면에 접어들어 새로운 미학적 충격을 주류 영화계에 안기거나 산업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한국독립영화의 가능성이 바닥을 치고 상승할 수 있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동안 한국영화 2편, 외국영화 1편 총 3편으로 제작됐던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는 그 희망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올해에만 특히 한국독립영화의 가능성에 전부를 거는 모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