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는 필리핀의 젊은 감독 라야마틴과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가 필리핀 선배 감독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제작한 작품이다. 필리핀 영화의 과거와 현재가 이 한 편의 영화 안에 뒤섞여 있는데, 최근 영화제를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필리핀 영화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마닐라의 낮을 주제로 작업한 라야 마틴은 이슈마엘 베르날의 <어둠 속의 마닐라>(1980)를 변주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다시 약물의 유혹에 빠지는 윌리엄이라는 인물을 보여준다. 반면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는 마닐라의 밤을 주제로 리노 브로카의 1979년 작품 <재규어>를 현대적으로 그려낸다. 재규어는 필리핀어로 경호원을 뜻하기도 하는데, 필립이라는 경호원이 겪는 비극적 사건을 통해 도시가 품고 있는 모순과 사회적 갈등을 보여준다. 마닐라 시장 아들의 경호원인 필립은 마닐라 하층민 출신이지만 시장 아들을 마치 친형제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밤에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 시장 아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그는 마닐라의 최하층민과 범죄자가 살고 있는 쓰레기 하치장으로 도주하며 그곳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마닐라>는 필립과 윌리엄이라는 인물의 비극적 상황을 통해 마닐라라는 도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장르 영화의 재미 안에서 필리핀 영화의 상업적, 미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더욱 큰 중요성을 가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