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망가(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이러한 소녀를 만나봤을 것이다. 짧은 교복 치마에 단정한 단발머리와 총명한 눈을 가진, 간혹 학교를 땡땡이 치지만 엇나가지 않는 쿨하고 사랑스러운 소녀 말이다. <핑크빛 하늘>의 이즈미는 이렇듯 방금 막 만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인물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매력적인 캐릭터의 힘을 막강하게 드러낸다. 우연히 거금이 든 지갑을 발견한 이즈미는 보다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지갑 속의 돈을 유용한다. 이로 인해 지갑 주인인 사토와 친구들 사이에서 소소한 소동을 겪게 되는데, 역시 그녀가 도달하는 결말은‘작은 성장’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와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그녀는 그만큼 성숙해졌다. 삶에서 부닥치는 소소한 것들에서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는 일본 10대가 등장하는 수많은 소년소녀 만화들에서 매우 익숙한 것이다. 그림이나 단어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여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방식인 영화를 택했다는 고바야시 게이이치 감독은 자신의 말 그대로 매체의 속성을 탁월하게 연결 지운 흥미로운 장편 데뷔작을 내놓았다. 일본 만화의 고전적인 데생을 닮은 흑백의 화면과 코믹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설정, 작은 깨달음의 소중함을 안고 있는 따뜻한 결말의 이 영화는 깔끔하고 담백한 일본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난 듯한 만족감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