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매거진』 아직도 가야 할 길 〈연습〉 라우렌스 페롤 감독
2024-05-04 17:54:00

〈연습〉의 젊은 주인공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에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주인공의 가치관과 자신답게 살고자 하는 신념으로 인해 단순해야 할 여정은 진정한 모험으로 변해간다.

영화에서 주인공 역의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주인공이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연습〉의 주인공은 어떻게 찾았나?

이 영화를 만들 때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반드시 실제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주인공을 찾고 싶었다. 이 부분에서는 〈웨스턴 Western〉(발레스카 그리제바흐, 2017)의 배우들을 섭외한 것으로 유명한 캐스팅 디렉터 카트린 포어더뷜베케의 도움을 받았다. 카트린과 함께 악기 경험이 있는 배우들을 비롯해 연기에 흥미가 있는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캐스팅 공고를 내고, 오디션 영상과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요청했다. 모집 공고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만 진행했는데, 양측 모두로부터 엄청난 지원이 있었고 악기도 굉장히 다양했다. 그리고 35명의 후보 중 최종적으로 코르넬리아 멜세터를 뽑게 됐다.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기 전 오랜 기간 열의를 갖고 트럼펫을 다뤄 온 데다 카리스마와 매력이 넘치는 여성 배우다.

주인공을 연기할 배우가 정해진 뒤 시나리오에 변화가 있었나?

시나리오 집필 초반에 주인공을 캐스팅했다. 배우들과 함께 인물을 발전시키고 배우들의 특성과 능력, 직관 등을 포함해서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시나리오 틀을 만들어 코르넬리아에게 보내면, 이를 바탕으로 그가 자유롭게 장면을 구상했다. 이런 방식으로 나와 코르넬리아는 함께 대사를 써 나갔다. 제작 과정에서 되도록 비행기를 탈 일이 없도록 이 작업을 매번 줌을 통한 화상 회의로 했는데, 이는 우리에게 대단히 잘 맞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예리한 통찰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었고, 그런 것들을 다시 시나리오에 반영했다. 그렇기 때문에 코르넬리아도 이 이야기에 큰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음악에 조예가 있었나. 아니면 이번 작품을 위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

나 또한 트럼펫을 분다. 트럼펫 연습을 하며 자랐고, 음악은 내 일상의 커다란 부분이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권유로 지속한 면이 없지 않지만(늘 좋아서 한 건 아니었다), 후에 연습이 보다 잘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연습의 이점을 깨달았고, 음악을 점점 더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삶의 다른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연습의 메커니즘을 열정적으로 탐구했던 것 같다. 연습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우리를 돕는지, 특히 우리가 큰 딜레마에 직면했을 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가 음악가를 다뤘다. 그런데 〈연습〉은 조금 다른 길을 택한 듯하다. 위대한 순간들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순간들을 피하고 있는 것 같다. 〈위플래쉬〉(2014)의 ‘안티’ 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연습〉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탄생했나? 순식간에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아니면 여러 단계에 걸쳐 대본을 썼는지 궁금하다.

정확하고 반가운 비평이다. 사실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위플래쉬〉를 많이 떠올렸고, 위대한 순간들의 ‘안티(anti) 순간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이 볼 수 없는 순간들 말이다. 〈위플래쉬〉처럼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대개 위대하고 화려한 순간,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공연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나름의 연습 경험에 비춰 생각해볼 때,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무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순간들이다. 수백 시간의 연습이 스포트라이트가 닿지 않는 커튼 뒤에 숨겨져 있다. 〈위플래쉬〉로부터 엄청난 영감을 받았고 그 작품의 여러 요소, 특히 사운드와 편집을 비롯한 리듬적 요소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위플래쉬〉와 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였다. 음악을 스포츠에 가까운 경쟁의 도구로 간주하기보다는 음악을 만들고 연습하는 행위가 지닐 수 있는 정신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주인공과 함께 길을 따라 먼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다. 촬영 동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그 때문에 시나리오가 수정되거나 추가된 부분도 있을까?

영화 전체를 12일 만에 찍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시작부터 커다란 도전이었다. 여기 더해 초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갖가지 제약 속에서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영화의 스타일에 반영하고 싶었고, 물론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느낌으로 촬영에 임했던 것 같다. 6일은 로포텐 제도에서 촬영을 진행한 후, 주연 배우 코르넬리아 멜세터와 스태프 5명 등 최소 인원으로 주인공 트리네의 이동 경로에 해당하는 1,500km의 길을 차로 실제로 따라갔다. 대본상 트리네가 잘되든 잘 안되든 도로변에서 한사코 트럼펫을 연습하는 장면을 여럿 준비했는데, 어느 장면을 어디에서 찍어야 한다고 정확히 정하진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길을 달리다가도 일종의 ‘실시간 촬영지 선정’이 가능했고, 즉흥적으로 차를 세워 촬영 중의 현실에서 마주친 새로운 요소들을 작품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조사차 똑같은 거리의 똑같은 길에서 직접 히치하이크하기도 했다. 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장면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었고,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이번 작품에 운전자 역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음악과 사운드를 무척 특별하게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의 트럼펫 연습은 물론 사운드트랙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그렇다. 영화의 사운드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개인적으로 음악적 배경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작품에 접근할 때도 언제나 청각적 접근을 하게 된다. 작품을 집필할 때 사운드로써 장면을 시작하고, 장소를 규정하고, 서사를 변화시키는 식이다. 나는 가능한 한 말보다 사운드(사운드 처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연습〉의 경우, 트리네는 음악가로서 세상을 주로 귀로 인식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평소 우리가 청각 세계로부터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조명하고 싶었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사운드 환경이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목소리 등일 텐데, 이는 결국 나아가 우리 내면의 목소리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또 트리네의 여정이 최종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의 모든 경험이 축적되는 청각적인 여정이 되기를 바랐다.

주인공의 강한 신념으로부터 촉발되는 이야기다. 이 신념은 주인공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고 주인공이 여정에서 만나는 인물들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주인공의 사고방식과 신념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트리네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기준과 관습을 정한 건 누구인가? 시스템이 실패할 때 무엇이 정상이고 합리적인 것인지를 누가 정하나? 트리네는 이런 질문들을 타협하지 않고 제기하려 하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임무, 아마도 갈등으로 뒤덮인 가장 어려운 길일 것이다. 나는 나를 포함해 모든 인간은 편안함과 편리함에 강하게 이끌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편리함의 끝이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이라면? 갈등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는 데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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