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매거진』 심장이 뛰는 소리 〈메이저 톤으로〉 잉그리드 포크로펙 감독
2024-05-04 17:55:00

아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빠와 친구들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10대 소녀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한 일이 생긴다. 어릴 때 사고 때문에 팔에 이식한 금속 판에 이상한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환상적인 영화와 성장 영화의 중간 즈음 위치한 이 영화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을 배경으로 인생의 한 단계를 지나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는 10대 소녀의 성장을 그린다.

권위 있는 프랑스 매거진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올해 3월호의 표지를 〈트렌케 라우켄〉(2022)(2023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당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다)의 한 장면으로 장식하고, 아르헨티나 영화산업을 단독 특집으로 다뤘다. 현재 아르헨티나 영화계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아르헨티나 영화산업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아르헨티나 영화산업 특집호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트렌케 라우켄〉이 표지에 실려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세계가 아르헨티나 영화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목한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가시성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영화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시기를 겪고 있다. 문화의 가치를 무시하고 ‘시장 가치’만을 우선시하는 현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영화를 보호하고 가능케 하는 기관들이 위협받고 있다. 영화에 대한 국가 지원이 완전히 중단되고 아르헨티나 영화산업이 극도의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르헨티나 영화계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아르헨티나 영화계가 세계 여러 나라 영화 제작자와 촬영 감독들의 지원과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앞선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작품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묻고 싶다.

영화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감독 데뷔작인 내 작품의 경우, 완전히 독립적으로 제작됐다. 〈메이저 톤으로〉는 내가 운영하고 있는 제작사 36 카바요스(이반 모스코비치, 후안 세군도 알라모스가 나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의 이니셔티브로 시작됐다. 하지만 제작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공 시네(마그달레나 스차벨손, 파블로 피에드라스, 곤살로 가르시아펠라요가 이끄는 곳이다)와의 공동 제작 덕분이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민간 자금을 바탕으로 비전통적 방식으로 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촬영은 소수의 제작진을 투입해 1년 반 동안 여섯 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편집자 미겔 데 수비리아와 함께 각 단계별로 찍은 내용을 그때그때 편집하며 촬영을 이어 나갔는데, 이 절차가 다음 단계를 예상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첫 편집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니 후반제작을 할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 ‘마켓 오브 올모스트-피니시드 필름스(MECAS)’ 부문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독립 제작사 하이보 필름스(스페인)를 만날 수 있었다. 하이보 필름스의 아단 알리아가와 미겔 몰리나는 우리 작품을 보자마자 관심을 표명하고 지원에 나섰으며, 남아 있는 모든 후반작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주었다. 이렇게 아르헨티나 제작사 두 곳과 스페인 제작사 한 곳이 힘을 모아 이번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메이저 톤으로〉가 데뷔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연기에서부터 대본 집필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했는데,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이전 작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번 작품 이전에 여러 이유로 결실을 맺지 못한 다른 장편 프로젝트도 있었을까?

먼저 좋은 말씀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미 5편의 단편을 감독하고 장편 제작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음에도, 이번 작품의 촬영을 시작한 초반에는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프로젝트를 지휘해본 적도 없고, 관계자들에 대한 책무도 훨씬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을 단계적으로 했다는 점이 작품에 대단히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앞서 밝힌 것처럼 독립영화이다 보니 한 번에 모든 걸 찍을 수 없고, 여섯 단계로 작게 나눠 1년 반에 걸쳐 찍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단계 사이의 시간은 나에게 무척 중요했다. 한 번의 촬영과 다음 촬영 사이에서 내가 엄청나게 성장한다는 게 느껴지곤 했다. 나는 지난 단계를 돌아보고 실수를 알아차린 뒤 다음 단계에서는 개선할 수 있었다. 또 이번 작품의 기술팀은 단순한 팀 이상이었다. 모두 다른 영화를 통해 이미 수차례 촬영을 함께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 속에서 형성된 상호 신뢰와 이해가 영화 촬영처럼 복잡한 과정을 헤쳐 나가는 열쇠로 기능했던 것 같다. 대본에 대해 말하자면, 몇 년 전에 썼지만 제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장편 작품이 있긴 했다(〈메이저 톤으로〉가 나타나면서 관심 대상에서 밀려났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또 대본 집필을 가르치거나 위탁 작가로 활동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경우 대본을 쓰는 내내 아르헨티나 극작가 왈테르 하코브와 아구스틴 멘딜라아르수의 피드백과 멘토링을 받는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이들의 식견과 우정이 작품에 심원한 도움을 줬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마지막으로 짧게 덧붙이자면, 〈메이저 톤으로〉는 내 단편 〈일렉트릭 보이 Electric Boy〉(2021)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는 이상한 힘을 가진 십대가 나온다. 몸에 지니고 있는 에너지로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램프를 켜고, 엔진에 시동을 걸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도시가 정전된 틈을 타 에너지를 제공하고 돈을 벌기도 한다. 나는 십대의 몸(영속적 갈등 속에 있는 몸)과 환상적 가능성의 관계에 특히 주목했다.

영화는 십대 인생의 어느 순간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환상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자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사항을 어떻게 통합할 수 있었나? 또 아르헨티나 작가들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 여러 곳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도시적이면서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를 그리지만 뭔가 이상한 것이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나는 환상 문학 장르에 매료돼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실비나 오캄포 등으로 대표되는 유서 깊은 환상 문학 전통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영화 부문에서는 몇 가지 명확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그만큼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특히 환상 장르가 그럴듯한 현실에서 출발해 그와 같은 현실성의 농도를 낮추고, 그 속에 초자연적 요소를 등장시킨다는 점에 끌린다. 이에 더해 나는 또 청소년기를, 주머니에 돈도 거의 없고, 휴대전화 배터리도 거의 없고, 앞날을 내다볼 능력도 거의 없는 그 삶의 시기를 그리는 데 흥미를 느꼈다. 십대의 움직임이 내포한 불확실성을 다루는 게 좋았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도시를 헤매는 것과 같은 그런 움직임 말이다. 그리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라는 데는 자전적 요소가 포함돼 있다. 주인공은 도시 외곽에 살고(나도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도시 외곽에 살았다), 수수께끼를 해독하려는 열망으로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며 수도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십대의 몸의 복잡성과 보이지 않은 수수께끼의 복잡성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바탕으로 이번 작품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나이의 주인공을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하다. 주인공 배우에게도 이 영화가 첫 작품인가? 함께 일하는 것은 어땠나?

소피아 클라우센은 캐스팅 공고를 통해 만났다. 다른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과 함께 최종 후보로 남아 있었는데, 주인공 아나는 열네 살이고, 소피아는 열두 살로 후보 중 가장 어렸기 때문에 뽑히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차례가 되자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여성 배우들에게 주어진 최종 면접 과제는 상당히 복잡한 텍스트를 외우는 것이었는데(아나의 독백으로, 이때의 텍스트 그대로 작품에도 나온다), 소피아는 모든 사람 앞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사를 쏟아냈다. 소피아는 그 독백의 순간에 인물이 느꼈을 욕망, 혼란, 불안정성까지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소피아는 의심의 여지없이 아나를 위해 준비된 배우였다. 게다가 촬영에 돌입하자 소피아는 더욱더 굉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첫 작품임에도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소피아의 프로 의식,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정이 이 영화를 가능하게 했다. 소피아는 주인공 이상이었다. 이 영화의 원동력이었고, 우리 모두 소피아의 지성, 욕망, 활력 덕분에 더욱 즐겁게 임할 수 있었다. 우리를 믿어준 데 대해서도 더없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물론 플롯의 한 부분으로도 음악이 특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에 관한 내용을 조금 들려주면 좋겠다. 또 음악과 개인적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렇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영화의 내러티브상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주인공 아나는 팔에서 이상한 맥동을 느끼는데, 아나의 친구 레파가 이 맥동을 ‘더 하트비트 송 The Heartbeat Song’이라는 노래로 바꾼다. 그리고 레파가 만든 이 노래의 악보 덕분에 이후에 아나는 미스터리를 해독한다. 팔의 맥동은 점과 선, 4분음표, 8분음표로도 볼 수 있다. 또 나는 음악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아르헨티나 음악가 가브리엘 크워니크의 도움으로 암호화된 코드로부터 멜로디를 구성하고, 이것을 라이트모티브로 변환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고전 공상과학 영화를 연상시키고, 무언가 이상하거나 미스터리한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하는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우리는 ‘공간적’ 혹은 ‘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리와 밝고 행복한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음악에 집중했다. 주인공의 상태, 즉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으로 나아가는 청소년 시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와 마법적 사고가 깃들어 있는 그 다리와 같은 시기를 음악적으로 서술하고 싶기도 했다.

주인공이 예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술에 전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간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말이다. 자전적 요소라는 주제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실제 삶에서도 그러한가? 영화를 표현 수단으로 선택한 까닭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예술이 등장하는 형태는 실제 내 삶의 한 모습이다. 아버지가 건축가이자 조각가여서(아버지의 조각품이 알폰소라는 인물의 작품으로 영화 속에도 나온다), 나는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던 아버지의 이상한 미로와 창작품들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집에서 예술과 예술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일상의 일부였는데, 무엇보다도 인간 정신에 꼭 필요한 것으로서 예술의 중요성을 논의하곤 했다. 한편, 비록 음악에 헌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은 나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이었고 청소년기에는 특히 더 그랬다. 나는 호기심이 가장 큰 특징인 아나라는 인물 또한 여러 흥미로운 것들과 자극, 어느 특정 예술에 몰두하거나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를 바랐다. 끝으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가 내 길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떤 결정의 순간이 있었다기보다는 다른 길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거 같다.

아르헨티나 영화에 관한 내용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마지막도 그렇게 끝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아르헨티나 영화로부터는 어떤 영향을 받았나?

우선 내가 마리아노 이나스, 라우라 시타렐라, 알레호 모기잔스키, 아구스틴 멘딜라아르수가 이끄는 제작사 엘 팜페로 시네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일하는 행운을 누렸다는 사실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열아홉 살 때부터 엘 팜페로 시네는 어떻게 보면 나에게 제2의 영화학교나 다름없었다. 이 네 사람은 영화와 인생 전반의 모든 것에 있어 나의 선생님이었으며, 존경하는 영화 제작자이자 내가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분들이다. 무엇보다도 모험과 픽션을 향한 신념을 알려준 데 대해 감사하고 있으며, 나 또한 그 종교를 독실히 믿고 있다. 우아함을 잃지 않으며 마음과 애정을 그려내는 아르헨티나 감독 가브리엘 메디나도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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