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로부터 ‘올해의 프로그래머’ 제안을 받고 과연 어떤 기준으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단순하게, ‘요즘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장르영화에 영향을 준 작품들로 프로그래밍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선택한 세 영화는 요즘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장르의 영화, 또 극장에서 관람할 기회를 놓친 작품들이다. 즉, 이 프로그래밍에는 요즈음 가장 많이 생각나는 영화들을 이번 기회를 통해 극장에서 관람하겠다는 이기적인 의도도 포함돼 있는 셈이다.
이렇게 선택한 첫 번째 영화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1986)이다. 내가 영화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들은 ‘필수 관람 목록’의 상위에 항상 올라 있었다. 그중에서도 <블루 벨벳>은 비교적 대중적인 문법을 지닌 영화이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개성이 넘쳐나는 영화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끊임없이 관객을 자극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두 번째 영화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1997)이다. <큐어>는 미지의 혐오와 불안을 마주하는 힘이 있는 영화다. 간결하고 정갈하며 정적인 화면 구성 속에 흠칫흠칫 들어가는 타이트하고 잔혹한 숏의 배치는 관객을 끝 모를 불안 속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 결말 역시 흐릿하고 명확하지 않아 이 영화의 불길함 같은 것을 더욱 배가시킨다. 그 시대에도 새로운 영화였지만 지금 보아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새로움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세 번째 영화는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실종>(2021)이다. 앞선 두 편의 영화와 같이 보기에 거대한 맥락 같은 것을 함께하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스릴러라고 하는 장르에서 앞선 두 작품처럼 ‘불안’이라고 하는 정서를 함께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앞선 두 편의 영화와 하나의 피를 나눈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올해 일본에서 개봉한 현재 진행형의 최신 영화다.
이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봄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장르영화의 매력과 동시에 장르영화의 변천까지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외에도 나의 첫 번째 장편영화 데뷔작인 <돼지의 왕>(2011)과 첫 번째 실사영화 데뷔작인 <부산행>(2016)도 프로그램에서 함께 볼 수 있다. 나는 마치 영화를 마냥 좋아하던 관객 시절로 돌아가 영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와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한없이 수다를 떨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무척 설렌다.
글_연상호(감독,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
더보기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