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인터뷰: <사랑의 고고학> 이완민 감독, 시간과 사랑의 감옥 바깥에서
2022-05-01 10:00:00

JeonjuIFF #3호 [인터뷰] <사랑의 고고학> 이완민 감독, 시간과 사랑의 감옥 바깥에서

<누에치던 방> 이후 오랜만에 만난 이완민 감독은 몇해 전과 마찬가지로 우선 가방에서 노트부터 꺼냈다. 찬찬히 빈 페이지가 있는 곳까지 종이를 넘긴 감독은 질문과 답변이 오고갈 때마다 자잘한 글씨와 기호들, 그리고 자유로운 곡선으로 공백을 채워나갔다. “쓰고 그리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가 이번 영화 <사랑의 고고학>에서 만들어낸 인물 영실(옥자연)도 어쩌면 비슷한 유형의 인간이다. 끈기있는 제토의 과정을 거쳐 땅에 희미하게 새겨진 유구선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되는 발굴의 예술은 영화 속 인물이 자기 마음을 되찾는 순간과 중첩된다. 그렇게 이완민 감독은 소리없이 대담하게, 시간과 사랑이라는 두 개의 감옥 바깥으로 발을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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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두번째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작년부터 서점에서 파트타임 근무 중이다. 계산하고 진열하는 단순 업무인데 내게는 꽤 재미있다. 책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누에치던 방>은 10대 시절의 기억에 얽힌 영화였다. <사랑의 고고학>은 마흔살이 된 여자가 지난날의 사랑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어떤 단서로부터 이번 이야기를 집필했나.

작업에 들어갈 때 보통 그 시기에 내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게 된다. 나누자면 <누에치던 방>은 청소년기가 남긴 흔적을, <사랑의 고고학>은 청년기를 지나면서 나를 가장 신경쓰이게 한 것들을 생각하며 썼다.

영화는 고고학자인 영실이 거쳐온 어떤 연애 관계를 들여다본다. 왜 고고학인가.

과거의 연애와 관계, 그리고 현재의 상태, 또 미래에 바라고 있는 관계 같은 것들이 층층이 놓였을 때 그것 자체로 고고학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사랑의 고고학>이라고 연상해보았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이 실제로 고고학자이면 좀 코믹할 것 같았다. 그게 출발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봤다. 제목이 <사랑의 고고학>인데 정작 이 영화 어디에도 사랑이 없다면 그건 어떨까?

박물관, 발굴 작업장, 학예사·연구원들을 낭만적으로 타자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세계의 속성을 영화의 예술적 동력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하지 않았다면 고고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한번은 익산의 미륵사지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곳 현장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갓 출토되어 비닐에 싸여 있는 유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유물 자신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로 땅 위에 드러나버린 것이 당황스럽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더라. 영화 제작이 시작된 이후로는 프로듀서의 소개로 경상북도 상주의 현장에 내려가서 3주 정도 작업장의 어르신들과 부대끼며 지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때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장면이 많다. 흙을 골라낸 다음(제토 과정) 유구선을 확인하는 작업이라든가, 능선을 따라 위로 걸어올라가는 연구원들의 뒷모습 같은 것들은 내가 직접 보고 영화 속에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습들이다.

영실을 연기한 옥자연에게서 이 배우가 가진 여러 레이어 중 가장 연약하고 섬세한 층을 본 것만 같다.

안으로 굉장히 넓고 깊이 패여있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혼자 땅 파고 있는 고고학자와 잘 어울리겠다는 확신이 섰고, 배우도 시나리오를 보고 금방 마음을 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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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인식과의 시간은 영실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현재의 영실이 혼자로도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외려 안도하는 것 같다.

나는 자주 혼자 있고,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상시적인 혼자의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을 자주 생각한다. 우리가 스스로 감지하는 정도, 혹은 그 이상으로 타인은 우리 안에 깊이 들어올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우리가 더이상 혼자가 아니게 되었을 때 예기치 않게 어떤 폭력적인 상태에 놓일 수 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 때의 나는 더 강력하게 저항하는 편이 좋았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 변화해야 했을까? 그런 고민의 줄기를 따라가며 만든 영화다.

헤테로섹슈얼의 연애에서 자주 재현되는 불합리한 일면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영실이 짧은 원피스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연인의 분노를 사는 장면이나 헤픈 여자라고 비난받는 장면이 그런데, <사랑의 고고학>은 젠더정치학의 관점에서 이를 고발하기보다 그런 순간들을 때로 천진난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찬찬히 수집해간다.

내게 어떤 숨막힘이 있었고 그걸 모아서 우선 어떻게든 1차적으로 표현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영화 속 영실의 대사로도 쓴 것처럼, 짧은 치마 한 번 입고 나가는 걸로 온갖 고민과 검열을 했던 청년 시절의 내가 싫었다. 분노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어느날은 문득 ‘여자라는 이유로 주민등록번호가 2로 시작해야 하다니!’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식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구조적으로 대면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를 건드리고 싶은 한편 나 자신도 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혹시 나 스스로 만든 감옥은 아닌지부터 분명치가 않았다. 그런 모호한 경계 지점을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고 있다. 사용법의 정확도와는 별개로 대중으로부터 심리적 공감을 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인식이 영실에게 가하는 몇몇 대사는 너무나 현실적인 디테일들이 녹아있어서 웃음이 터질 정도였는데,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얼마나 구체화되어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처음부터 어떤 답과 방향성을 갖고 접근하지 않았고 상황에 충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직간접적인 내 경험과 관찰들을 있는 그대로 녹이는 것을 우선시했다. 애드리브는 거의 없었고 시나리오에 구체화한 상태였는데, 일단 촬영 현장에 가기 전에 배우들과 사전 미팅을 많이 가지려고는 했다.

인식을 견뎌보려 하는 영실의 대처 역시 은근히 집요한 구석이 있다. 솔직히 말해 관객을 안심키는 유능한 주인공은 아닌데. (웃음)

답답하지. (웃음) 고지식한 사람, 어떤 의미로는 원칙주의자로 그려보고 싶었다. 그런 인물이 자기 특성을 어떤 극단까지 밀고 갔을 때,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인식과 약속한 내용을 끝까지 곧이곧대로 지키려고 노력할 때 그 자리에 무엇이 남을까 궁금했다. 기본적으로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인물형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누에치던 방>과 마찬가지로 시간성에 대한 감독의 주관적 해석이 여실한 영화다. 문득 시간 순서가 어긋나거나 뒤섞인 장면이 틈입하기도 한다. 168분으로 러닝타임 또한 길다. 내러티브의 큰 밑그림을 우선 그려두고 시작한 서사일까.

일단 길이는 좀 줄여볼까 생각 중이다. (웃음) 얼마만큼의 긴 시간을 어떻게 다룰지, 구조를 먼저 세우지는 않았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초반의 내레이션이었다. “내게도 행운이 있을 수 있을까?” 영실이 우도라는 새 남자를 마음에 품으면서, 그 남자도 과거의 인식처럼 자신을 대하지는 않을지 스스로 질문할 때다. 바로 이 순간에서부터 영화의 모든 나머지가 파생된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을 입에 넣었을 때 기억이 확 하고 펼쳐지는 것처럼 내게는 어떤 모먼트로 다가왔다.

[글·김소미, 사진·오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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