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선정작 발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작품 공모에 소중한 작품을 출품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올해는 8편의 극영화, 1편의 다큐멘터리가 선정되었습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에서 상영될 작품을 아래와 같이 선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한국경쟁 선정작(9편, 가나다 순)
1) <경아의 딸 Mother and daughter>(김정은)| Korea|2022|118min |DCP|Color
2) <내가 누워있을 때 When I Sleep>(최정문)|Korea|2022|116min|DCP|Color
3) <비밀의 언덕 The Hill of Secrets>(이지은)|Korea|2022|122min|DCP|Color
4) <사랑의 고고학 Archaeology of love>(이완민)| Korea, France|2022|168min|DCP|Color
5) <윤시내가 사라졌다 Missing Yoon>(김진화)|Korea|2021|108min|DCP|Color
6) <잠자리 구하기 Saving a Dragonfly>(홍다예)|Korea|2022|85min|DCP|Color
7) <정순 Jeong-sun>(정지혜)|Korea|2021|105min|DCP|Color
8) <파로호 Drown>(임상수)|Korea|2021|101min|DCP|Color
9) <폭로 Havana>(홍용호)|Korea|2022|101min|DCP|Color
‘한국경쟁’ 심사평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접수된 영화는 124편이었습니다. 올해 출품 경향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탓인지, 한동안 바깥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시선들은 가족이나 사랑 같은 내적인 세계로 향하는 듯 보입니다. 가족을 다루는 영화 중 우선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이지은 감독의 <비밀의 언덕>입니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소녀는 시장에서 젓갈 장사로 일하는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 와중 소녀는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으면서 학교에서 인정받게 되고 그럴수록 부모의 존재는 더욱 큰 콤플렉스가 됩니다. 부모에 관한 거듭되는 거짓말과 글짓기에 수반되는 진실성이 충돌하면서 소녀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또 다른 가족영화인 김진화 감독의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갑자기 사라진 가수 윤시내를 찾아 헤매는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항상 윤시내만 생각하며 모창까지 업으로 삼은 가수 엄마와 가까운 사람을 몰카로 찍어서라도 조회수만 올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관종’ 딸은 사라진 스타를 찾아내기 위해 갖은 난관을 겪고 이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가족 이야기는 여성의 이야기로 변주됩니다. 김정은 감독의 <경아의 딸>은 ‘N번방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듯 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동영상 유출로 고통 받는 딸과 그 딸을 바라보는 엄마입니다. 제목이 함의하듯 이야기의 중심은 엄마 쪽에 조금 더 쏠려 있습니다. 딸이 겪은 사건을 파악하고 딸의 속내를 이해하면서 엄마는 서서히 진정한 ‘엄마의 자리’를 깨닫게 되고, 결국 가족은 새롭게 정립됩니다. 정지혜 감독의 <정순>은 동영상 유출 사건을 모티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에서 <경아의 딸>과 유사점을 갖고 있지만 이야기의 구도와 주인공의 상황은 다릅니다. 영화의 주인공 정순은 엄마이자 중년 여성 공장 노동자입니다. <정순>은 가족에 대한 담론 보다는 사건의 당사자인 정순의 표정과 몸짓에 포커스를 맞춰 인간적 수모와 모멸을 홀로 감당하던 한 여성의 결단을 힘 있게 묘사합니다. 최정문 감독의 <내가 누워있을 때>는 우연하게 길에서 ‘조난’된 세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립니다. 한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 그리고 친구로 맺어진 이 세 여성의 관계는 길 위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알량한 실체를 드러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진정한 연대의 시작이 됩니다.
이완민 감독의 <사랑의 고고학>은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려는 한 여성이 보여주는 특이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고고학자인 여성이 8년 전 한 남자와 나눴던 사랑 이야기와 여전히 이 남자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여성이 새로운 사랑을 꾸려가려는 이야기를 교차시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유물을 보고서야 본질을 파악하는 고고학도답게 여성은 현재형의 사랑과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홍용호 감독의 <폭로>는 겉으로는 법정 스릴러 장르의 모양새를 드러내지만 절절한 사랑 이야기라는 속내를 가진 영화입니다.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여성과 그의 무죄를 밝히려는 변호사, 유산을 노리는 남편의 가족이 뒤얽히는 차가운 법정 드라마가 한 축이라면 숨은 채 여성을 돕는 어떤 존재를 중심으로 한 뜨거운 멜로드라마가 다른 축을 이루게 됩니다.
임상수 감독의 <파로호>는 한 남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심리 스릴러입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수발하면서 모텔을 운영하는 주인공 남성은 걸핏하면 초인종을 눌러 자신을 호출하는 어머니와 그를 깔보는 모텔 바깥 사람들 때문에 커다란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 영화는 남성의 환영인지, 실제 사건인지 구분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섬뜩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파로호’라는 거대한 알레고리 안으로 보는 이를 이끌어 갑니다.
예년과 달리 다큐멘터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부족했던 올해, 홍다예 감독의 <잠자리 구하기>는 가장 두드러진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홍 감독은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학의 의미를 간절하게 묻고 또 묻습니다. 입시생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지워가는 게 싫어 고등학생 시절부터 카메라를 들었던 감독의 고민은 재수를 거쳐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지속됩니다. 물에 빠져 허덕이는 잠자리 같은 자신과 친구들을 구하기 위한 절실한 마음이 영화 안에 가득합니다.
올해는 소재라는 측면에서 보다 다양해졌고 장르적인 시도 또한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질적 수준이 낮아졌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민의 깊이가 다소 얕아진 듯하고, 좋은 주제를 가지고도 핵심을 비켜가는 듯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OTT나 웹드라마 같은 다양한 플랫폼의 확대도 관련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입니다. 창작을 위한 여건도 나빠졌고 창작자가 어딘가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상황이 자연스레 결과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내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보다 많은 문제작과 만나길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여성감독의 강세가 계속되어 올해는 눈에 띌 정도라는 것입니다. 한국경쟁 선정작 9편 중 무려 7편이 여성감독의 작품입니다. 전주에서 시작된 이러한 추세가 이어져 상업영화계에서도 여성감독의 약진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빕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