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한 예술가 백현진이 연극 연출에 도전하며 배우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의 독특한 연출은 무대 위에서 알 수 없는 상황으로 풀어진다. 사람들의 울부짖음, 한 여자의 독백, 또 다른 여자가 노래를 립싱크하는 장면들이 순서 없이 등장하고, 백현진은 원시인, 가수, 그리고 해설자로 무대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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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기본적으로 2023년 9월 열린 <백현진쑈: 공개방송>이라는 공연의 기록물이다. 백현진 자신은 물론이고 김고은, 김선영, 문상훈, 장기하, 한예리 같은 이들이 출연했던 이 공연은 금세 매진됐고 관람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큰 궁금증을 낳았다. 어쩌면 무대로부터 먼 좌석에서 관람한 관객조차 궁금증을 갖고 있었을 법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 배우 혹은 가수는 백현진이 만든 무대에서 그동안 본 적이 없는데다 예상조차 못했던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영화 안에 잘 담겨있다. “백현진의 본업은 추적자(였)다. 추적자는 흔적의 기억을 좇는다”는 문화평론가 손이상의 말처럼, 백현진은 이 무대를 통해 음악가, 미술가, 영화감독, 무대예술인, 시인 등 그의 작업을 포괄하는 추적자로서의 본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무대 현장을 기록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박경근 감독은 『씨네21』과 인터뷰에서 “공연의 현장성이라는 3차원의 것을 2차원으로 가져올 때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반대로 3차원에서는 볼 수 없던 수많은 것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설명했는데, 이 영화는 공연에 대한 박경근 감독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실제 공연과 다른 순서와 맥락으로 편집돼 있다. 여기에 백현진의 일상과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더해져 공연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물이 됐다. 백현진과 그의 예술적 내면이 궁금하다면 꼭 봐야 할 영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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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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