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한 지 120년이 넘은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로 시작해 멜리에스, 그리피스, 존 포드 등의 감독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공식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다른 종류의 역사도 있을 수 있고,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중 하나로 알리스 기블라셰로 시작해 아이다 루피노, 라리사 셰피트코, 마야 데렌, 클레르 드니 등의 여성 감독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스페셜 포커스는 지난 21년 동안 재능 있는 영화인을 발굴하고, 주류 시스템 밖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혁신적인 영화를 지지해 온 전주국제영화제의 전통을 이어 가며 하나의 대안적인 독립·실험영화의 역사를 소개해 보려 한다.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에서는 영화 사조의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영화로써 증명했던 7명의 독립영화 감독과 그들이 만든 15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① 세계대전 후 활동한 첫 이탈리아 여성 다큐멘터리스트 체칠리아 만지니의 초기 단편 6편 <미지의 도시>, <마리아와 나날들>, <스텐달리 (스틸플레이)>, <습지의 노래>, <여자-되기>, <목의 굴레>. ② 1970년대 유신 체제 아래서도 최초의 한국 여성 실험영화 집단 ‘카이두 클럽’을 이끈 한옥희의 초기 실험영화 4편 <구멍>, <중복>, <색동>, <무제 77-A>. ③ 이란 뉴 시네마의 선구자 포루그 파로흐자드가 남긴 유일한 영화 <검은 집>. ④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 <완다>를 만든 바바라 로든. ⑤ 프랑스 누벨바그의 얼굴. 스타 배우가 상업영화가 아닌 작가로서 감독이 된 초기 사례인 안나 카리나의 첫 장편 연출작 <비브르 앙상블>. ⑥ 뉴 퀴어 시네마 최초로 레즈비언 흑인 여성으로서 극영화 <워터멜론 우먼>을 만든 셰럴 두녜이. ⑦ 뉴 아르헨티나 시네마의 대표 주자 알베르티나 카리의 <금발머리 부부>.
체칠리아 만지니, 포루그 파로흐자드, 바바라 로든, 한옥희, 안나 카리나, 셰럴 두녜이, 알베르티나 카리. 이들 7명의 감독들은 아무도 자신이 무언가의 시초가 될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이들의 영화는 이전에 시도하지 않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고, 당대에 금기시하던 주제를 드러내고, 소수자에 대한 공감의 상상력을 불어넣으며 영화 역사의 중요 순간에 발자취를 남긴 작품들이었다.
끝없이 변화하고 성장한 사람들, 독립적인 존재로 자신의 본질에 닿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인디펜던트 우먼’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여전히 동시대적이고 인간 실존과 자유 의지라는 보편적 가치를 질문하는 그들의 독립영화를 통해 타자에 대해 사유하고 영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착상을 해 내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전주국제영화제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 작품들의 영화적 가치를 논의하기 위해 동시대 7인의 여성 비평가의 시선을 모은 출판물도 준비했다. 이를 계기로 감독들의 이름과 작품이 지속적으로 불리고 논의되어 끊임없는 현재적 생명력을 이어 가 다른 독립적인 주체들의 탄생에 영감을 주길 바란다. 또한 다양한 맥락의 역사와 해석이 존재할수록 우리는 더욱 풍부한 영화 문화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번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이 수많은 버전의 개인적인 영화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문성경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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