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함께 준비한 회고전 ‘충무로 전설의 명가 태흥영화사’는 지난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태원 태흥영화사 대표를 추모하고, 태흥영화사가 한국영화사에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극장을 운영한 故 이태원 대표는 1984년, 바로 전해에 인수한 ‘태창흥업’의 이름을 ‘태흥영화’로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업에 뛰어든다.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창립작으로 <비구니>를 준비했지만 불교계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뽕>(1985)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탄탄대로에 올랐고, 1990년 <장군의 아들>로 당시 최고 관객 수 기록을 깼으며, <서편제>(1993)로는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우기까지 했다. ‘흥행사’로서 놀라운 감각을 발휘한 이태원 대표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다양성을 넓히기 위한 시도도 펼쳤다. 배창호, 김유진, 곽지균 같은 당대의 감독들과 작업을 했을 뿐 아니라 이명세, 장선우, 김홍준, 김용태처럼 젊고 새로운 감각을 지닌 감독들에게 손을 뻗어 힘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계에 이태원 대표가 남긴 가장 중요한 족적은 아무래도 임권택, 정일성과 함께 ‘삼총사’가 되어 만든 영화들일 것이다. <비구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대표는 이 두 파트너와 함께 작업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 결과 <장군의 아들>이나 <서편제> 같은 흥행작이 나오기도 했고, 칸영화제에 진출하며 한국영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렸던 <춘향뎐>(2000)과 <취화선>(2002)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태원 대표는 꾸준히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에 힘을 기울였지만, 임권택과 정일성이라는 파트너를 만나면서 비로소 커다란 날개를 달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마지막까지 충무로의 유산을 지키려 애쓴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극장을 처분해가면서까지 태흥의 영화를 스스로의 자본으로 만들었고, 영화판이 돈으로 물드는 풍조를 경계했다. 결국 금융자본이 한국영화계의 지형을 바꾸어 놓으면서 그 또한 ‘남의 돈’을 투자받아 마지막 3편, 즉 <춘향뎐>과 <취화선> <하류인생>(2004)을 만들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충무로의 마지막 거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취화선>을 비롯해 모두 8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이두용, 김유진, 장선우, 배창호, 김홍준, 이명세, 송능한 감독의 대표작이 선보일 예정이다. 이 중 <취화선>과 <장미빛 인생>(김홍준)은 디지털 상영본으로 최초 공개된다.
글_문석 프로그래머
* 이 회고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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