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의 열한 살 토리와 열여섯 살 로키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임에도 사람들에게는 남매라고 말한다. 그리고 토리와 로키타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지에서 실제 남매보다도 더 깊이 서로에게 의지하는데, 이들은 식당을 운영하는 베팀이라는 남자에게 마약을 받아 소비자들에게 배달하고 수고비를 받으며 악착같이 살아간다. 특히 로키타는 생활비를 벌면서 고향 카메룬에 있는 엄마와 다섯 형제에게 돈을 부쳐야 하고, 자신을 벨기에로 올 수 있게 한 브로커에게 진 빚도 갚아야 한다. 베팀에게 성적 착취까지 당하는 로키타가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 허가 비자를 얻어야 하지만, 심사에서 계속 탈락하고 만다. 그러자 베팀은 로키타에게 자신이 시키는 일을 하면 위조된 비자를 구해주겠다고 제안하고, 로키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토리와 로키타에게 서서히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다르덴 형제의 여러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토리와 로키타> 역시 회색빛의 벨기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외된 이주민들의 이야기이며, 도덕적 양심에 질문을 던진다는 점과 시종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더욱 강렬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특히 영화의 첫 시퀀스인 로키타의 이민 심사 장면부터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은 대단하다. 이민 심사가 시작되고 처음에는 로키타의 모습이 차분해 보이며, 대답도 약간은 형식적이지만, 그녀가 답하기 어려운 내용을 물어보자 모든 것이 변하고,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한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은 그런 로키타의 심리상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르덴 형제의 작품에 워낙 비전문 배우들이 자주 등장하고, 대부분 뛰어난 결과물을 얻어냈던 것처럼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와 토리 역을 맡은 파블로 실스 역시 마치 실제 남매처럼 애틋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매 아닌 남매의 비참하고 필사적인 삶은 직접적인 가해자인 마약상을 비롯한 악의 세력들과, 간접적인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국가 권력의 외면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진한 감동과 여운도 줄 것이다.
프로그래머 전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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