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이란 한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영화산업에서는 종종 유명세와 수치만으로 영화와 인물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팽창과 확장만 성과로 보는 사회적 기준은 느슨해졌지만, 새로운 거장을 소개하는 데에는 어떤 가치의 척도를 내세워야 할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그간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창조해 온 마스터로 불려 마땅한 이들을 이 섹션에 초대한다. 소비로서의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를 창조하는 생산적 가치를 지닌 거장들의 영화를 이곳에서 발견하길 바란다.
먼저 개인적인 시선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세 편을 소개한다. 〈리카르도와 그림〉은 바벳 슈로더가 대형 영화제작 방식을 모두 내려놓고, 자신이 갈고 닦은 영화 언어조차도 새롭게 바라보려는 접근이다. 대상에 대한 존중으로 화가 리카르도 카발로의 삶과 가치를 드러내는 소박하고 순수한 방식을 취했다.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미국 영화의 정치적 양심으로 명명한 트래비스 윌커슨의 신작 〈무덤들 사이로 바람이 불고〉는 크로아티아에서 ‘게으른 관료주의 기생충’으로 놀림을 당하는 탐정을 내세워 파시즘이 침략한 사회를 드러낸다. 오스트리아의 과거와 현재에 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온 루스 베커만의 시선이 머문 곳은 한 학교이다. 〈파보리텐〉은 고전적인 형식의 다큐이지만 이민자의 삶이 전 세계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 시대상을 한 교실의 학생과 선생의 교류를 통해 드러낸다.
전주국제영화제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다. 페드로 코스타가 만든 음악영화 〈불의 딸들〉이 있고, 마르틴 레흐만과 드니 코테의 장편 신작도 있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통해 소개된 마르틴 레흐만은 뉴아르헨티나시네마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번 〈요가 연습〉에서는 ‘요가’라는 소재를 통해 관계의 연습, 삶의 연습을 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동시대 캐나다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색깔을 지닌 감독 드니 코테의 〈마드모아젤 케놉시아〉는 시간이 세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흐르는 듯한 낯선 공간에 거주하는 미스터리한 여인을 그렸다.
실험적인 형식의 영화도 세 편 준비했다. 피터 메틀러는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목소리를 가진 감독 중 한 명이다. 신작 〈푸른 잎이 자라는 동안〉은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철학적인 영화로 치환해 관객에게 시각적 아름다움과 인생에 대한 사고라는 풍요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게르니카 앞에서 (감독판)>은 1975년부터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를 연출해온 예르반트 자니키안, 안젤라 리치 루키의 신작이다. 안젤라 리치 루키의 사후에도 예르반트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도 공동 연출이라 일컫는다. 전쟁이 세계를 뒤덮은 것 같은 어두운 시대에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서 감독은 인간의 폭력과 그 역사에 대해 질문한다. 〈아키텍톤〉은 이탈리아 건축가의 조경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사유가 고대 건축을 통과해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다다른다. 건축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실험적이고도 시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작품이다. 별세한 두 거장, 샹탈 아커만과 라울 루이스의 초기작도 있다. 17세의 샹탈 아커만이 영화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만든 단편 〈샹탈 아커만이 카메라로 본 첫 번째 시선〉과 칠레의 전설적인 감독 라울 루이스가 만든 〈사회주의 리얼리즘〉(1973-2023)이다. 후자는 1973년 칠레 쿠데타 이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대중 단결 과정을 풍자적 시선으로 그린 작품으로 수십년이 지난 후 마침내 최종 편집본을 공개했다. 영화는 노동계급과 부르조아를 대표하는 지식인 집단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올해 ‘마스터즈’ 섹션의 영화들은 무력하고 수동적인 관객이 아닌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논의를 지속할 협업의 상대로 관객을 이끈다. 이 영화들이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다른 형식의 말하기를 경험하는 기회이자 동시에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극단적 옹호가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사고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다.
프로그래머 문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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