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전주’는 영화와 영화의 역사에 관한 사유를 촉구하는 섹션이다. 2022년 시작된 이래 계속 확대돼 왔고 올해 프로그램은 장편 15편과 단편 3편으로 마치 영화제 속의 작은 축제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영화와 게스트의 방문이 준비돼 있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긴 252분 길이의 영화와 3분이 채 안 되는 가장 짧은 영화가 이 섹션에 있다는 정보가 모험정신이 충만한 시네필의 호기심을 자극하길 바란다. 이곳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모두 영화 역사의 한 부분이지만, 일부는 잘 알려졌고, 일부는 한 번도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 영화제가 아니라면 보기 힘든 작품들이고 복원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 갈 게스트까지 정성을 쏟아 준비했기에 관객들이 모든 걸 충분히 즐겨주길 바란다.
먼저, 복원작 중 특별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마사 쿨리지의 〈예쁜 영화는 아니야〉(1975)는 때론 과거의 영화가 현재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사회가 그 폭력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관해 극영화와 다큐가 혼합된 형식으로 표현한 영화이다. 독보적인 독창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접하기 힘들던 이 영화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지만 지금도 해결법이 없어 보이는 ‘데이트 성폭행’이라는 쟁점을 다룬다. 마사 쿨리지 감독은 영화언어의 모든 요소를 사용하여 민감한 주제의 중요성만큼이나 매우 섬세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유럽 영화의 두 거장,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와 자크 리베트의 복원작도 관객을 만난다. 포르투갈 감독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아브라함 계곡〉(1993)은 디지털 복원을 하며 확장된 편집 버전으로 지난 칸영화제에서 소개됐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권력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감독의 말을 빌려 이 작품을 소개해 본다. “여성은 어떻게 권력자인 남성에 저항하는가. 비록 환상일지라도 자신의 시적 세계관이라는 힘을 사용해서 말이다. 엠마는 세상을 일련의 파워 게임으로만 보는 남성 캐릭터에 저항하기 위해 서정성과 서사시,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시를 만드는 방식에 매달린다.”
평론가 조너선 로젠바움은 〈미치광이 같은 사랑〉(1969)에 대해 “이 영화는 60년대의 꿈과 절망을 잘 포착하고 있으며,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영화를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평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과 광기에 대해 말하는 영화로 지난해 시네필전주 상영작 〈엄마와 창녀〉(장 외스타슈, 1973)와 마치 대화를 하는 듯한 영화이다.
망각 속에서 구출해 낸 다큐멘터리 중에는 〈룸 666〉(1982) 이 있다. 빔 벤더스 감독은 1982년 칸영화제 기간 한 호텔의 빈방에 고정 카메라를 설치하고 감독들의 셀프 인터뷰를 진행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장뤼크 고다르, 스티븐 스필버그 등 영화인들에게 영화의 죽음에 관해 질문하고 이들의 생각을 모아낸 다큐다. 40년 후 뤼브나 플레이우스트 감독은 2022년 칸 영화제 기간 같은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출연자들이다. 〈룸 999〉에는 현재 작가 감독이라 불리는 알베르 세라, 클레어 드니, 배즈 루어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알리체 로르와커 등이 등장한다. 그간 무엇이 변했는가? 영화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들의 답을 알기 위해서는 두 편의 영화를 모두 봐야만 한다.
〈비바 바르다!〉(감독 피에르 앙리 지베르)가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아녜스 바르다라는 이름 외에 무엇을 더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일종의 전기영화로 이 전에 공개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이미지와 감독, 주변인들의 진술이 포함되어 있다.
〈라이카 시네마〉(감독 베리코 비닥)는 핀란드의 작은 시골 마을의 삶을 보여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영화관을 세워가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 그리고 한 명의 감독이 관객과 함께 영화관이 죽지 않도록 헌신하는 모습이 담겼다. 짐 자무쉬 감독도 특별 출연한다.
〈오스피나 칼리 콜롬비아〉(감독 호르헤 데 카발로)는 콜롬비아 영화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루이스 오스피나 감독에 관한 광범위한 인터뷰이다. 영화의 제목은 감독의 성(Ospina), 그가 활동하던 지역 이름이자 예술가 그룹명인 칼리(Cali), 그리고 감독의 국가 콜롬비아를 나열해 그의 영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정체성을 표현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우리는 그의 영화에 대한 생각과 관점에 대해 배울 것이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의 전설〉(감독 낸시 뷔르스키)은 60 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기 뉴할리우드시네마의 정점을 찍은 영화 〈미드나잇 카우보이〉(1975)의 탄생 배경을 들려준다. 존 슐레진저 감독과 배우 존 보이트, 더스틴 호프만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과 같은 화려한 면을 강조하기보다, 어떻게 한 편의 영화가 특정 시대와 장소의 본질을 포착하는지 조명한다.
〈헨리 폰다를 대통령으로〉(감독 알렉산더 호바트)는 오스트리아 비평가이자, 빈영화제 위원장(1992-97), 오스트리아영화박물관 관장(2002-17)을 역임했던 알렉산더 호바트의 감독 데뷔작이다. 헨리 폰다라는 할리우드의 상징적인 배우를 추적하며 폰다의 네덜란드 조상에서부터 그의 반항 기질이 가득한 자녀 제인 폰다와 피터 폰다에까지 이르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존 포드, 세르지오 레오네와 같은 특급 손님을 영화 속에 등장시켜 역사 또는 전설이라 불릴 수 있는 영화의 흔적을 북미의 역사와 만나게 한다.
올해 ‘게스트 시네필’에 초대된 인물은 영화 복원 세계의 전문가 데이비드 메리엇이다. 그는 벨라 타르의 전설적인 영화 〈사탄탱고〉(1994)를 비롯해 〈마지막 영화〉(데니스 호퍼, 1971), 니나 멩키스의 영화까지 고화질 디지털 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영화 후반작업사이자 배급사 아르벨로스 필름(Arbelos Films)의 공동 설립자이다. 그가 캐나다 영화역사의 비밀을 드러내는 듯한 영화 세 편의 복원작업을 끝내자마자 전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영화감독이 되는 데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 언급하는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데이비드 섹터, 1965), 〈볼륨을 높여라〉(1990)를 만든 감독의 데뷔작이지만 거의 알려진 바 없는 〈고무로 만든 총〉(앨런 모일, 1977), 마지막으로 가혹한 현실과 지나간 시대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지만 오늘날 여전히 메아리처럼 반복해서 말해지는 사회문제를 다룬 〈데이비 스트리트의 창녀들〉(감독 재니스 콜, 홀리 데일, 1984)까지 한국 관객들에게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영화를 공개한다. 캐나다의 60, 70, 80년대 희귀작업을 한자리에 모아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메리엇이 직접 소개하는 영화와 복원에 대한 특별한 시간도 준비되어 있다.
시네필전주를 찾는 게스트 중에는 하버드필름아카이브의 헤이든 게스트 원장도 있다. 영화제의 좋은 친구이자 조력자로 올해도 그가 큐레이팅한 실험영화를 소개한다. 조던 벨슨 감독의 〈매혹〉(1961)과 로버트 비버스 감독의 〈작업 완료〉(1972/1999)는 하버드필름아카이브 소장 35mm 필름으로, 어니 기어의 〈사이드/워크/셔틀〉(1991) 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 35mm 필름으로 상영된다. 일본의 학자이자 평론가인 히라사와 고도 전주를 찾는다. 아다치 마사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특이한 영화 〈약칭: 연쇄살인마〉(1969)의 복원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관객과 나눌 예정이다. 이 영화는 특별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보유 35mm와 일본 디지털 복원판을 상영해 비교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단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실험영화 감독 우테 오란드가 연출한 〈아르제날 필름 아카이브〉는 3 분이 채 안 되는 매우 짧은 영화이지만 베를린의 전설적인 아카이브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최근 아르제날 영화관에서 전주디지털삼인삼색 회고전을 개최했고, 유서 깊은 영화관 역사의 일부가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시네필전주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과거에 속해있거나, 과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섹션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단지 망각으로부터 그들을 구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얼마나 과거가 우리에게 도전을 요하고, 현재에 관해 질문하는지를 자각하게 하려는 것이다. 영화의 현재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현재에 대해서도 그렇다. 과도하게 쏟아지는 콘텐츠로 며칠 전 공개된 영상이 묻혀버리는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는 시네필전주의 가치는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라짐’이라는 것은, 삶의 모든 것이 그렇듯, 우리가 무언가에 관심을 멈추고, 보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관객들과 함께 영화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살아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시네필전주의 소박한 제안이다.
프로그래머 문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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