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전주국제영화제가 25회째를 맞는 해인 동시에 한국영상자료원이 창립 50주년 되는 해다. 이번 특별전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그동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큰 반향을 모았던 영화 4편과 한국영상자료원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선정한 1950년대 한국영화 걸작 리스트 ‘50/50’에서 4편, 그리고 지난해 12 월과 올해 1월 각각 타계한 김수용 감독과 이두용 감독의 대표작 1편씩, 모두 10편을 최신 복원, 디지털화 버전으로 상영한다.
특별전을 통해 보여지는 전주국제영화제 역대 상영작은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을 비롯해 역시 제1회 영화제에서 선보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와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그리고 제7회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다. 이중 〈오! 수정〉, 〈플란다스의 개〉, 〈사랑니〉는 4K 디지털화 버전으로 이번 행사를 통해 전 세계 첫 상영을 하게 된다. 한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지난 2016년 만들어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상영된다.
〈미망인〉은 한국 전쟁 미망인의 삶을 다루는 영화로 한국영화사에서 큰 획을 긋는 작품이다. 한국 최초 여성 감독 박남옥 감독의 데뷔작이며 당시로선 파격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동시에 박남옥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됐고 이 영화를 통해 표출된 여성의 욕망 또한 시대적 한계 안에서 작동한다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이 영화의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미망인〉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마지막 장면이 유실돼 결말을 영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강천 감독의 〈피아골〉은 지금 와서야 한국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소재를 휴머니즘으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개봉 당시만 해도 장안에 뜨거운 반공/용공 논쟁을 몰고 왔다. 휴전 이후에도 지리산 피아골에 잔존하던 빨치산 부대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결국 ‘용공 영화’로 몰려 상영이 취소되었고 훗날 다시 상영되기도 했다. 〈피아골〉은 전북 영화계의 뿌리가 된 영화로 평가받기도 한다. 김소동 감독의 〈돈〉은 개봉 당시부터 현재까지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모범으로 불려오는 영화다. 산업화 초기였던 1950 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도시에서 몰려온 새로운 풍조로 무너지기 시작한 농촌의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돈〉은 대배우 김승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의 물건을 훔치고 빼돌리는 일당을 전면에 내세우는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에서 초점은 이야기의 주인공 영식이 아니라 영식의 애인인 쏘냐, 아니 엄밀히 말하면 쏘냐를 연기하는 최은희에게 맞춰진다. 최은희의 쏘냐는 지금까지도 가장 강력한 팜므파탈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당시까지 ‘한국적인’ 여성만 연기하던 최은희의 대변신은 영화 안과 밖에 놀라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안개〉는 〈갯마을〉(1965)과 함께 40년 동안 109편을 만든 김수용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명실상부한 대표작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삼는 〈안개〉는 김수용이 개척하고 만개시킨 문예영화의 하나이면서도 원작만큼이나 모더니즘 성향이 뚜렷한 영화이기도 하다. 〈안개〉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알랭 레네의 영화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두용 감독의 〈피막〉은 지금 기준으로 말하자면 오컬트 영화다. 한 양반가 장남의 병에 차도가 없자 전국 각지의 용한 무당이 모여들고 이 중 한 무당이 장남의 저주가 호리병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면서 호리병에 얽힌 과거사가 드러난다. 피맺힌 원한과 복수가 뒤얽히는 이 영화는 우리 고유의 샤머니즘과 어우러지면서 공포스러우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8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 돌풍을 일으키는 〈파묘〉(2024)와 비교해도 흥미로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고전 복원작 중 〈안개〉를 제외한 5편은 모두 4K 디지털로 상영된다.
프로그래머 문석
* 이 특별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주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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