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시대에 영화제라는 행사는 차라리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영화관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내놓지만, 여전히 어딘가에는 오직 영화를 보기 위해 마치 의식처럼 매년 이 계절에는 이 도시에, 또 다른 계절에는 저 도시에 모이는 관객들이 있다.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1973)은 카스티야 지방의 시골 마을에 필름 릴과 영사기를 실은 ‘영화 트럭’이 도착하는 것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영화 트럭이 오는 일요일만 기다린 마을의 아이들은 신이 나서 트럭 주위를 돌며 외친다. “영화가 온다! 영화가 온다! (The movie’s coming! The movie’s coming!)” 영화제에 모인 관객들을 볼 때면 이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서 상영작을 선정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오래전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에 가서 본 영화들이었다. 보통 영화제에서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영화들이 상영작의 주를 이루지만, 적극적으로 시대착오적이기를 택하는 관객들이라면 이 몇 편의 옛날 영화를 좋아해 줄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응암동에 있던 동시상영관인 신양극장에 〈바보들의 행진〉을 보러 갔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혼자 극장에 간 날이었다. 어쩌다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그것도 청소년관람불가였던 영화를 보러 갔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받은 충격만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바보들의 행진〉은 억압의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우울과 허무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 받지만, 어린 나에게는 하길종 감독이 유쾌하게 묘사한 캠퍼스의 자유와 낭만이 더 커다란 인상을 남겼다. 그날 어른들 사이에 앉아 목을 길게 빼고 영화를 보며 나는 빨리 커서 대학생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느꼈다. 나는 내가 청년이었던 80년대보다 70 년대 청년문화의 취향과 문화적 감수성에 더 큰 친숙함과 향수를 느끼는데 그건 어느 정도는 이 영화가 내게 미친 영향 때문일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때, 또 다른 동시상영관인 모래내 은좌극장에 갔다. 내가 〈바보들의 행진〉의 주인공 병태와 같은 학교, 같은 과의 학생이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지만,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은 〈바보들의 행진〉 속 그것에 비하면 별 볼 일 없이 심심했다. 그러다 어느 권태로운 오후에 도쿄 ‘긴자(銀座)’를 우리말로 옮긴 이름의 극장에서 〈파리, 텍사스〉를 만났다. 건조하고 느린 화면에 라이 쿠더의 멜랑콜리한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이 영화에 매료됐다. 빔 벤더스는 〈파리, 텍사스〉에서 인물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관계의 중력이 변하는 찰나의 순간을 탁월하게 담아낸다. 집으로 가는 길, 트래비스와 아들 헌터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멀찍이 떨어져 반대편 인도에서 걷는다. 그러다 트래비스가 멈춰서고, 헌터도 멈춰 아빠 쪽을 바라본다. 트래비스가 천천히 길을 건너 헌터 옆에 서고, 마침내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2분 정도 지속되는 이 장면에는 아무 대사도 없다. 그때만 해도 나는 영화감독이 될 생각이 없었고 영화 애호가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그날 처음으로 영화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 있음을 느꼈다.
서른 살 때, 나는 파리에 머물고 있었다. 〈파리, 텍사스〉의 배경인 미국 텍사스의 소도시 파리가 아니라 프랑스 파리 말이다. 소르본 대학이 있는 라탱 지구의 어느 낡은 극장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거기서 〈동경 이야기〉를 봤다. 일본 영화를 프랑스어 자막으로 봤으니 당연히 한 마디의 대사도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이미지가 이야기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당신이 오즈의 여름 영화들에서 인물들이 진심을 숨길 때 그들이 부채질을 하는 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주목해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자막이 없어도 오즈의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즈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에 오래 시선을 두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는 무상히 지나가는 기차,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빨래, 어두운 밤 가늘게 피어오르는 향 연기, 수면 위에 반짝이며 부서지는 햇빛 같은 것들이 삶의 진실을 말한다. 이후 한국에서 〈동경 이야기〉를 한국어 자막과 함께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사적인 역사를 거슬러 선택한 영화들을 2024년에 한 자리에 소환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 올봄 전주에서 나와 같은 극장에 앉아 이 영화들을 보게 될 관객들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 짧은 고요 속에서 속으로 “영화가 온다! 영화가 온다!” 하고 외쳐주었으면 좋겠다.
올해의 프로그래머 허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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