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쟁' 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코리안시네마' 부문에도 전주에서 이미 작품을 선보였던 감독들의 신작이 여럿 소개된다. 명실공히 전주국제영화제의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고봉수 감독의 <빚가리>는 소시민들의 삶을 웃프게 묘사해온 감독의 색깔이 여전히 두드러지는 영화다. 이혼한 아내에게 줘야 할 위자료는 고사하고 공과금까지 연체 중인 동네 슈퍼 주인을 중심으로 무능력한 아들과 걸핏하면 이들 부자를 공격하는 딸, 그리고 외상값이 밀렸음에도 계속 담배를 달라는 지역 중소기업 사장 등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넉넉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성혜의 나라>로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했던 정형석 감독도 20회 <앙상블>, 지난해 <선산>(단편)에 이어 네 번째로 전주를 찾는다. 신작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는 새로운 무대를 올릴 준비를 하는 한 극단을 배경으로 한다. 신작을 준비하며 영감이 고갈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극작가와 서울대 출신이라는 신입 연극 단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낸다.
제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데뷔작 <낮술>로 한국경쟁 부문 대상(JJ스타상)을 수상했던 노영석 감독도 〈THE 자연인〉으로 15년 만에 전주에 돌아온다. 〈THE 자연인〉은 귀신을 다루는 유튜버가 댄스 유튜버인친구와 함께 귀신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산골을 찾으며 벌어지는 괴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담는다. 유튜브가 모든 일상 속으로 침투한 모습을 통해 현대 미디어 세계를 통렬히 풍자하는 작품이다.
퀴어 실험영화 <괴물, 유령, 자유인>을 21회 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선보였던 홍지영 감독도 신작 <이 파도를 이 물결을 돌려줄게>를 가져왔다. 전작의 메시지를 끌어안으면서도 다양한 영상적 시도와 내러티브 실험을 통해 보다 감성적이고 명징한 세계를 선보인다.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를 상영하는 김보원 감독도 전주에 관한 기억이 있다. 20회 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던 그의 작품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이 신작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3개의 이야기가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이 영화는 코믹한 전개 속에 반짝이는 진실을 숨겨 놓았다. 올해 슬램댄스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중견 감독들의 신작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꾸준히 퀴어영화 세계를 추구해온 김조광수 감독은 OTT 플랫폼 왓챠에서 방영한 드라마 「신입사원」의 극장판 <신입사원: 더무비>를 전주에서 선보인다. 이미 웹소설과 웹툰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모스카레토 작가의 원작을 김조광수 감독 스타일로 녹여냈던 드라마 버전을 다시 장편영화 버전으로 가공했다. 드라마에서 보이지 않은 장면도 포함됐다.
<지슬 - 끝나지않은 세월2>, <어이그, 저 귓것>, <뽕똘> 등을 통해 제주도의 다양한 목소리를 질박하게 보여줬던 오멸 감독은 세월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파미르>를 만들었다. 2017년 공개했던 동명 단편의 설정으로부터 시작해 세월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슴 아프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 가까워졌음에도 아직도 우리의 상처가 여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시꽃>, <현기증>, <팡파레> 등을 통해 인간과 관계 안에 자리잡은 지독하게 어두운 세계를 그려내며 주목받았고, <봄날>로 ‘주류 영화계'까지 나아갔던 이돈구 감독도 <미지수>를 통해 독립영화계로 돌아왔다. 어이없는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시작되는 <미지수>는 얼핏 어두운 분위기의 전작들과 맞닿아 있는 듯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SF적 상상력과 멜로드라마 감성이 교차하는 독특한 실체를 드러낸다.
할리우드에서 CG 작업을 통해 영화계 일을 시작했고 미국에서 <헤븐리 소드>라는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데뷔한 장권호 감독은 <요선>으로 2021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신작 <똥통>은 마임의 대가 유진규 선생을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혼합해 만든 <요선>과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 강화도를 배경으로 두 남자와 두 여성이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이 영화는 예술가의 삶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라인업도 흥미롭다. 조준형, 이규열 감독의 <건축학 고양이>는 커피숍 주인이자 영화 제작자인 빈스로드 정윤재 대표와 아내 장윤선씨가 집을 새로 지으면서 겪는 일을 담았다. 집을 짓는 각각의 과정 속에서 열성적인 ‘캣맘'인 아내와 이웃의 눈치를 보는 남편 사이 갈등은 증폭되고 길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도 깊어진다.
안지환 감독의 <삼각형의 마음>은 배우들로 구성된 ‘맘 산악회'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배우 손병호가 이끄는 이 산악회는 백여 명의 누적 회원과 함께 매주 월요일 북한산을 오르며 활동하고 있다.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며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궁핍한 삶을 살아가던 연극 배우들에게 이 산악회는 매우 큰 위안이 되는 존재다.
김나연, 이동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옥순로그>는 치매를 앓기 시작한 김나연 감독의 할머니와 가족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어느 날부터 기억이 사라져 가는 할머니에 대한 감독의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동거인으로서의 괴로움까지 담고 있다. 때때로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덜 상처받을 수 있는 길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해준다.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둔 관객이라면 크게 공감할 영화.
김지환 감독의 <자우림, 더 원더랜드>는 대한민국의 슈퍼 밴드 자우림의 팬이라면 놓쳐선 안 될 영화다. 지난해 자우림이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과 콘서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중심에 놓고 자우림의 출발부터 현재를 돌아보고, 멤버들 사이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배철수, 임진모, 배순탁, 옥상달빛, 그리고 배우 서현진 등의 자우림에 대한 생각까지 담겨 있다.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들 또한 포진해 있다. 권유리, 길해연, 현우석 배우가 출연하는 배두리 감독의 <돌핀>은 작은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영화다. 겉보기에 화목해 보이는 주인공 나영의 가족은 엄마가 새로 결혼을 하면서 살던 집을 팔려고 하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균열이 드러나며 위기를 맞는다.
<굿타임>으로 21회 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강동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로스트>에는 이수혁, 하윤경, 권다함 배우 등이 나온다. 선천적인 폐 질환을 앓고 있던 주인공 태화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내고 뇌사 상태에 빠진 아버지로부터 폐 이식을 받은 뒤 죄책감에 시달리다 사고 피해자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동휘, 한지은, 강신일, 유재명 배우 등이 등장하는 김진태 감독의 <모라동>은 행복한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한 남성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수술을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복잡한 가정사 때문에 엄청난 수술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아버지를 기초 수급자로 만들어야 한다. 해체된 가정 속에서 자라며 자신의 완벽한 가정을 꿈꾸게 된 한 남성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한편 코리안시네마 부문의 단편 중 눈길을 끄는 영화들도 있다. 우선 그 유명한 장편 <82년생 김지영>을 만들었던 김도영 감독의 <저, 엉덩이만 들여놔도 될까요?>는 애초 <82년생 김지영> 이전에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장편 작업과 겹쳐 오랫동안 후반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이제야 상영하게 됐다. 두 여성의 궁극적 연대를 뛰어난 합으로 전하는 영화다.
<마담 B>, <파이터>, <송해 1927> 등을 만들었으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신작 장편 <숨>을 소개하는 윤재호 감독의 단편 <찌개>는 생모를 만나기 위해 서울을 찾아온 해외 입양 여성 에이미의 이야기. 에이미는 얼마 전 돌아가신 생모 대신 그가 남긴 찌개 맛과 생모를 “엄마"라고 부르는 또 다른 여성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찌개를 매개로 가족의 의미를 물으며 관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프로그래머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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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열리는 ‘전주영화X마중: 눈컴퍼니’ 행사는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또는 영화제와 무관하게라도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을 위한 영화 프로그램인 ‘씨네투어'의 일부로 기획됐다. 이중 ‘전주영화X마중’은 독립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가 있는 소속사와 함께 상영과 토크 등 다양한 행사를 만들어 관객과 일반 관광객들 모두 즐길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독립영화계의 쟁쟁한 배우들이 소속된 눈컴퍼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행사에는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눈컴퍼니 소속 배우들이 거의 모두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눈컴퍼니 배우들의 출연작을 상영하는 특별전에서는 소속 배우들이 직접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게 된다. 이를테면 김보라, 박정연, 노재원 배우의 단편영화를 트는 [단편모음 1] (<이별여행>, <유리의 여름>, <한비>, <아빠는 외계인>) 상영 때는 이민지 배우가 GV를 진행하며, 이민지 배우의 단편을 모아 상영하는 [단편모음 2](<반신반의>, <뎀프시롤: 참회록>, <달이 기울면>, <부서진 밤>) 때는 이석형 배우가 마이크를 잡고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게 된다. 이외에도 김슬기 배우가 출연하는 <고속도로 가족>, 강길우 배우가 나오는 <초록밤>, 이상희 배우가 주연하는 <겨울밤에>, 장선 배우가 등장하는 <비밀의 언덕>, 조수향 배우가 주연을 맡은 <들꽃>, 권다함 배우의 연기가 돋보인 <그 겨울, 나는>, 우지현, 강길우 배우가 나왔던 <더스트맨>, 그리고 이석형 배우의 주연작 <하트>가 각각 상영될 예정이다. 이들 상영에서도 눈컴퍼니 배우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전주영화X마중: 눈컴퍼니’ 프로그램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4월 30일과 5월 1일에 걸쳐 네 차례 진행되는 ‘마중 토크’다. 이 자리에서는 눈컴퍼니 소속 배우들이 거의 총출동해 솔직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전망이다. 또한 눈컴퍼니 배우들이 전주를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된 화보집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프로그래머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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