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X전주국제영화제] 제대로 된 작별 인사
2021-05-01 10:00:00

제대로 된 작별 인사

<혼자 사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

진아(공승연)의 세상은 정확히 1인분의 크기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타인과 교류가 없으니 특별히 감정이 동요할 일도 없다. 때문에 어떤 전화 상담도 능숙하게 받아내며 콜센터의 에이스라 불린다. 그런 진아의 세상에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이 들어온다. 콜센터 업무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수진을 보며 진아는 자신이 처음 입사했을 시절을 떠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진아는 퇴근길에 자신의 옆집 남자가 홀로 사망한 채 발견됐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1인 가구가 마주한 고독과 불안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영화다.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타인과 헤어지고 새롭게 관계를 맺는 순간들까지, 영화는 나홀로족의 현실과 변화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포착한다. “영화감독의 꿈이 단순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홍성은 감독은 2017년 한국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장편연구과정을 수강하며 데뷔작 <혼자 사는 사람들>을 연출한 홍성은 감독은 “많이들 느끼지만, 느낀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외로움이란 감정”에 관심이 많다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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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떻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기획하게 됐나.

20대 때 혼자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나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 관심이 없었고, 퇴근하고 집에서 혼자 쉬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혼자 사는 삶이 만족스럽다고 느낄 무렵 우연히 고독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보면서 무척 공포스러웠고 많이 울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가 사실 내가 혼자 사는 것, 그리고 혼자 죽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 때 혼밥, 혼술, 혼영 등을 인증하는 게 유행이지 않았나. 굳이 그걸 인증하려 드는 건, 다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외로움과 불안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걸 영화에 담아보고 싶었다.

특히 고독사에 대한 불안은 1인 가구라면 다들 느껴봤을 거라 생각한다. 진아의 옆집에 살던 이웃도 사망한 지 한참 뒤에 발견된다. 다만 포르노 DVD들에 깔려 죽었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했다.

비슷한 사건을 해외 기사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미국의 한 남자가 포르노 잡지 더미에 깔려 죽은 사건이었다. 너무 외로운 마음에 그런 잡지에 의지하게 된 게 아닐까 싶었는데 해당 기사는 그 남자의 죽음을 너무 희화하더라. 마음이 좋지 않은 채로 그의 죽음에 관해 생각하다가 영화 안으로 끌고 들어오게 됐다.

평소 사회 이슈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편인가.

시사·정치는 필요한 만큼만 보는데, 나와 관련 있거나 관심 있는 주제는 더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콜센터에 관련된 자료 조사는 어떻게 진행했나.

콜센터 상담일이 워낙 감정노동으로 악명이 높다보니 기사나 다큐멘터리 등 참고할 관련 자료가 많았다. 주변 경험자에게도 물어보고 콜센터에 직접 취재도 나갔다. 영화에 등장하는, 자신이 타임머신을 개발했다고 전화하는 정신이상자도 실제 있었던 사례다.

진아가 베테랑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진아 뒤편의 상담원은 항의에 못 이겨 울며 뛰쳐나가는데, 진아는 아무렇지 않게 상담을 이어가는 신이 기억에 남는다.

진아라는 인물을 명확히 보여주는 신이다. 진아의 프로페셔널함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에게 지극히 무심하다는 점도 함께 드러내려 했다. 사운드도 진아에게 중요한 소리만 잡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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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진아의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인물이 바로 신입사원 수진이다. 진아는 초반엔 수진에게 굉장히 차갑게 대하지만, 후반부엔 그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진아는 직접 대면하는 관계에 정말 서툰 사람이다. 그래서 수진에게 더 어색하고 냉정하게 구는 거다. 하지만 나는 이게 진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아도 회사에서 자신을 제대로 케어해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받은 만큼 되물려 주는 거다. 하지만 진아가 수진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그 악순환을 끊어줬으면 했다.

진아의 새 이웃 성훈(서현우)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성훈은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잘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성훈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은 인물이다. 그걸 한마디로 정의하면 ‘작별인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훈은 작별 인사를 잘 할 줄 알기 때문에 떠나가는 관계,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관계에 관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수진이 작별인사를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성훈이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해주는 걸 봤기 때문이다.

공승연, 정다은, 서현우 배우의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진아는 특이할 정도로 단절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공감을 이끌어내고, 너무 괴짜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해서 그에 맞는 배우를 떠올리는 게 어려웠다. 그러다 공승연 배우를 만났는데 그간 작품을 통해 봐온 밝은 모습 외에도 진중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또 극중 직업상 목소리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공승연 배우의 목소리가 낮고 안정감이 있더라. 진아와 굉장히 잘 맞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를 캐스팅한 게 내가 영화를 준비하며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수진은 진아와 나이 차이가 너끈히 나 보이면서도 너무 앳되지 않은 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정다은 배우가 제격이었다. 시나리오 해석력이 정말 탁월했다. 나는 저 나이 때 저렇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똑똑할까 싶었다. (웃음) 성훈이란 인물은 처음에 적어놓은 한 줄 설명이 있었다. 내 이상형. (웃음) 친숙하면서도 진지한 면모를 지닌 배우가 누가 있을까 하다가 서현우 배우가 떠올랐다. 당시 서현우 배우가 실제 다리를 다친 상태였는데, 그냥 극중에서도 성훈이가 목발을 짚으면 어떨까 싶었다. 배우에게 그 설정을 말씀드렸더니 재밌어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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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의 집을 복도식 아파트로 설정한 이유도 있을까.

복도식 아파트를 고른 건 옆집을 필연적으로 지나쳐야 하고 그러면서 이웃들과 접점이 생기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진아의 방구조에 관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 우선 원룸이 아니었으면 했다. 이 사람이 자기 방에 많은 걸 우겨넣은 걸 보여주고 싶어서 구역이 나뉘어있는 집을 골랐다.

전반적으로 조명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본래 진아의 방은 항상 어두웠는데 변화가 감지되는 시점부터 진아가 커튼을 열어젖히더라.

혼자서도 잘 지내느냐의 척도는 적막과 암흑 속에서 얼마나 괜찮은가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선 자기 자신만 남고, 그만큼 외로워지니까. 진아는 그걸 잊기 위해 계속 영상을 틀고 TV불빛과 같은 인공적인 빛에 의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중엔 그런 빛과 소음이 없어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후반부에 TV도 끄고 커튼도 걷는다. 그게 꼭 정답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진아가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혼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와닿았으면 하나.

작별인사에 관한 이야기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우리가 눈앞의 사람들에게 냉담해지는 건, 작별인사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릴 땐 누군가와 헤어지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상대를 내게 중요치 않은 존재로 만드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그 관계가 의미 없는 건 아니란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타인과 잘 헤어질 수 있다면 새로운 관계도, 그 관계가 가져오는 불확실성도 잘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며 그런 점에 공감하실 수 있길 바란다.

글 조현나·사진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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