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juIFF #8호 [인터뷰] <애프터워터> 다네 콤렌 감독, 흐르는 영화, 흐르는 미래
어려운 영화. <애프터워터>를 감상한 이들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의견이다. 불친절하다 못해 어떠한 추측도 거부하는 이야기의 진행이 내내 골머리를 앓게 만든다. 동시에 <애프터워터>는 쉬운 영화다. 스크린, 스피커에 흐르는 자연과 생명의 생동감에 흠뻑 취하다 보면 우리는 가장 단순한 영화적 즐거움이 무엇이었는지 절감하게 된다. 이런 양면성은 다네 콤렌 감독의 성격과도 같다. 그는 일종의 난해함에 박식한 영화·현대 미술 전공자이자, <쥬라기 공원>에 열광하던 할리우드 키드였다. 또 영화란 결국 이미지와 사운드가 전부라고 단언하는 영화 근본주의자이자, 촬영 및 상영 체계의 변화에 따라 영화의 미래를 유연하게 고민하는 현대주의자이기도 하다. 이토록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매력 때문일까. 벌써 3번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를 만나 영화론을 직접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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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워터>가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통해 제작, 공개됐다. 과정과 소감이 궁금하다.
처음 <애프터워터>를 준비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투자 문제였다. 마침 전주시네마프로젝트를 알게 돼 지원했고, 선정되어 무척 기뻤다. 진행 과정에서도 영화에 관해 간섭하거나 의문을 갖기 보다 늘 열린 자세로 제작진의 의견을 이해해준 점이 늘 고마웠다. 사운드 믹싱과 편집을 할 때쯤 팬데믹으로 인한 도시 봉쇄가 시작되다 보니 2년이 지나서야 상영하게 됐다. 옛날에 만든 영화를 소개하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들지만, 마침내 영화로 관객과 만나 대화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이런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팬데믹 이후 다시금 느끼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물이다. 많은 물 중에서 특별히 호수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생명의 기원으로서 물을 생각하면 바다의 광활함이나 개방성을 떠올리기 쉽다. 반면 호수는 경계가 확실히 보이기 때문에 제한된 공간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호수야말로 그 기저에 우리가 볼 수 없고, 생각하지 못했던 어두운 부분을 가득 지니고 있다. 영화에 나오듯 호수 밑에 침몰당한 마을이 숨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겉으로 상상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호수의 성질이 영화의 이야기 및 형식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영화가 물의 애프터(after)를 다룬 이유는?
물이 상징하는 자연의 근본 같은 것이 없는 세상을 한번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런 새로운 세상을 생각한다면 무척 무겁고 음습한 이미지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애프터눈(afternoon)’을 떠올리며,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까지 포함하길 원했다.
<애프터워터>의 가장 매혹적인 장면들은 숲과 호수의 나른함이나 개구리, 송충이, 풀벌레 등 온갖 생물들의 순수한 움직임이다. 연출 의도와 방법이 궁금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자연과 인간 외 다양한 존재들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그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 과정을 사운드와 이미지로 최대한 생생하게 구현하는 일이 영화의 목표였다. 프레임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에서도 기본적 구조는 계획했으나 현장에서의 즉흥적 결정도 많았다. 주변 자연의 상황에 따라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경험을 배웠다. 서사를 진행한 방식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인간 외 생물들에 맞춰 굉장히 유동적이고 유연한 이야기로 흘러가도록 접근했다.
사운드의 사용도 무척 돋보인다. 특히 인물들이 직접 대화하지 않고 낭독이나 숨소리로 소통하는 방식 등이 신선했다.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은 무척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영화들은 너무 한 가지 방식에 고착되어있지 않았나. <애프터워터>를 앞서 말했듯 유체와 같은 영화로, 유동적인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사운드의 전달 방식을 추구했다.
영화의 1부, 2부, 3부를 각각 디지털카메라, 16mm 필름, VHS로 촬영한 방식도 특이하다.
관객들이 각각의 다른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길 원했다. 시간에 관한 색다른 경험, 흐름, 질감을 느끼길 바랐다. 미래를 그린 3부의 경우, 원래는 스마트폰이나 고프로 같은 가장 현대적인 기기를 활용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기기들도 몇 년만 지나면 구식이 될 텐데 과연 미래를 제대로 표현하기에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중 오히려 예전의 기술을 사용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엉뚱한 발상을 했다, 1980년대 전후의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들을 봤던 기억에서 영감을 얻어 VHS를 선택했다. 명확하지 않게 열화된 이미지가 오히려 미래에 관해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나에게 있어 영화는 어떤 하나의 포맷만을 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제작하고 촬영하는지보다는 실제로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집중하려 한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영화는 많은 사람이 일정 시간 동안 어두운 장소에서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런 정의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끔 흘러가고 있다. 미래의 영화를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공상과학 영화들을 참고했다 하니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3부에서 인물들의 숨소리가 강렬히 연출되는데,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스베이더를 생각했는지?
하하.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무척 재밌는 생각이다. 물론 내 유년 시절에 <스타워즈>는 별로 큰 비중이 없었고, 최근에 영어 공부를 하면서 보기 시작한 정도다. 나는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에 열광했다. 차기작도 어릴 적 굉장히 좋아했던 호러 무비, <식스 센스>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사람이고 남성인 주인공이 사실 사람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이야기다.
<애프터워터>는 기존의 영화문법을 거부하는 영화인데, 관습화된 할리우드 작품들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다니 신기하다.
이런 고전들을 무척 좋아한다. 비슷하게 1920-30년대의 러시아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특정 시대의 영화에 특별히 제한받기보다는 영화의 다양한 양상 자체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영화문법으로 시작해 실험적인 방식, 예를 들어 동식물에 관한 자연적 다큐멘터리 등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에 특히 흥미를 느끼고 있다.
[글·이우빈, 사진·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