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juIFF #10호 [수상작 인터뷰] <도쿄의 쿠르드족> 휴가 후미아리 감독, 무엇이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나
국제경쟁 심사위원특별상 <도쿄의 쿠르드족> 휴가 후미아리 감독
열여덟 오잔, 열아홉 라마잔은 도쿄에 정착한 터키 쿠르드족 난민이다. 터키의 인종 탄압을 피해 도쿄 교외에 자리잡은 쿠르드족 난민들은 1990년대 이후로 꾸준히 증가해 현재 2천 명을 웃돌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들에게 난민 비자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고국의 전시 상황에 참여하지 못해 갈등하는 오잔과 난민 신분을 인정받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픈 라마잔. 비록 욕망의 세부는 다르지만 이들은 일본 사회가 지워버린 그림자 지대 안에서 함께 신음하며 버틴다. 일본의 다큐멘터리스트이자 TV 프로그램 프로듀서인 휴가 후미아리 감독은 단편영화에서부터 쿠르드족 난민 문제에 주목해, 첫 장편 <도쿄의 쿠르드족>에서 청년 쿠르드족들의 억압적인 현실을 생생히 포착했다. 2015년 격화된 시리아 내전 상황으로부터 마음 속 불씨를 틔운 그는, 일본이 어째서 난민들에게 “안전하고 평화롭지만 동시에 매우 무기력하고 침잠된 장소”일 수밖에 없는지를 파헤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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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영화 <도쿄의 쿠르드족>을 만들기 전에 단편 <도쿄의 쿠르드 청년>(2017)을 제작했다. 처음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과 그 경로가 궁금하다.
일본 정부는 터키와 정치적으로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비해, 비자 없이 일본에 머무르면서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살고 있는 터키 쿠르드족 난민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구체적으로는 2015년에 IS가 터키 국경 지역에서 내전을 일으켜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구를 공격한 사건이 촉발제가 됐다. 일본에 쿠르드족 난민이 거주한 것은 1990년대부터로 꽤 오래되었지만, 시리아 내전 이후 전세계로 난민들이 흩어지는 역사적 풍경을 목도하면서 내 이웃 난민들에 대해 더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쿠르드족에게 일본은 고향의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저 있기만 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장소로 그려진다. 난민의 지위가 갖는 정치·사회적 역학 뿐 아니라 인간적 정서를 세심하게 포착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로서는 쇼크였기 때문이다. 처음 취재를 시작했을 때 쿠르드족 뿐 아니라 시리아인, 미얀마 로힝야족을 두루 만났는데 이들은 고향에 전쟁이 나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존에 관한 기본권에 있어서 일본은 너무도 안전하고 평화로운 지대임이 틀림없는데, 그들은 왜 차라리 돌아가서 싸우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것일까? 안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도망쳐온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다시 위험한 전장에 돌아가고 싶어하는지, 그 질문을 해결해야 이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청년들에게 질문했다. 그들은 자신이 일본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존재의 의미도, 인정도, 역할도, 장래도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 이 다큐멘터리 작업은 도대체 일본의 무엇이 10대, 20대 쿠르드족들을 무력하게 만드는가를 파헤치는 과정이었다.
부모 세대와 달리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낸 두 청년 오잔과 라마잔을 주요 인터뷰이로 채택한 이유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그렇다. 다양한 이들을 캐스팅하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오잔은 특히 자신의 일하는 모습이라든가, 사적인 모습을 찍도록 환영하고 격려해 준 사람이었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일을 하지 말라고 제지를 가함에도 불구하고 오잔과 라마잔은 노동하기 위해 애쓰는 청년이었기에 그들의 투지를 담는 방향으로 내 마음도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에도 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인데, 자국 상황을 다각도로 지켜보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쿠르드족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태도에 모순이 있다고 보나.
일본의 미디어는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 난민 신청자들에게 보여준 태도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실정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현재 일본 정부의 모습이 국제 사회의 눈을 의식한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질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가까이 지냈던 도쿄 거주 쿠르드족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심정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공감하며 그들이 우선 안전한 거처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그런 와중에 마음 한편으로 혼란스럽고 억울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왜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서는 이토록 우호적으로 말하면서 자신들은 받아주지 않는 것인지 질문한다. ‘우리들이 싸워온 지난 15년은 뭐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다큐멘터리 촬영 이후 오잔과 라마잔의 행방과 안부도 궁금하다.
오잔은 여전히 공사장에서 일하는데 얼마 전 일본인 여자친구가 생겨서 요즘 꽤 좋은 상태다. (웃음) 오잔이 밤길을 달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실제로 마지막 촬영이었다. 사실 그 이후에 나와 오잔의 관계가 한번 굉장히 멀어진 적도 있었다. 더이상 취재를 오지 말고 신경도 쓰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었다. 그 당시가 오잔이 막 스무살이 되었을 무렵인데, 무척 상심한 채로 내 나름대로 반성의 시기를 보냈다. 다행히 지금은 관계를 회복했고,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은 얼마 전 일본에서 열린 상영회에서였다. 자신이 살아온 서사에 관객이 경청하는 경험이 오잔에겐 무척 기쁨인듯 해 이제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라마잔은 자동차 대학 졸업 후 정비사 자격증을 무사히 땄다. 작년에 비자를 취득했는데 난민 인정 비자는 아니고 거주 비자로 받았다. 아, 결혼도 해서 라마잔 역시 요즘이 가장 편안해 보인다.
[글·김소미, 사진·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