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juIFF #10호 [수상작 인터뷰]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 시릴 쇼이블린 감독, 목가적인 정치영화
국제경쟁 작품상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 시릴 쇼이블린 감독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는 정밀하고 조용한 언어로 혁명의 시간을 그리는 영화다. 1870년대 스위스, 쥬하 산맥 아래의 시계 공장에도 산업화의 물결이 닿는다. 손수 시간을 빚어내는 섬세한 노동자 일군들은 자긍심 뒷면에서 노동 환경과 조건에 대한 의심을 키우기 시작한다. 지도 제작자이자 여행자인 러시아인 표트르가 시계공장의 무정부주의자들과 동행하는 동안 영화는 시계공장과 자본주의의 공고한 시스템 아래 결코 포섭되지 않는 것들을 응시한다. 그것은 매우 인간적인 관계와 감정의 세밀한 흐름이며, 또 소리없이 끓어오르는 자각의 순간들이다. <도즈 후 아 파인>(2017) 이후 두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스위스의 감독 시릴 쇼이블린은 목가적 정치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관객을 사유하게 만든다.
{image:1;}
왜 과거로, 19세기 시계공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는가.
내 바람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영화적 통로를 찾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과거를 재현한다는 것은 일종의 건축 작업과 비슷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시간 관념을 무너뜨린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체계를 믿고 있지만 이 시대의 시간이란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다. 1800년대 산업화 시대부터 구축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18세기로 돌아가서 다시 이야기해야만 했다. 핵심은 이 자본주의가 19세기에 완전히 ‘개발’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구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이나 장소에 기반해 영화를 구상했나.
촬영감독과 매우 많은 곳을 여행했다. 별 아래서 야외 숙식을 하면서 지낼 정도로 로케이션 선정에 고심했다. 무빙이 많지 않고 풍경과 환경을 하나의 숏 안에 정확하게 담아내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그만큼 공간의 선택이 많은 것을 좌우했다. 실제 촬영은 쥬하 산맥 근처에서 모두 마쳤다. 실제로 공장 노동자들의 아나키스트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가 카메라를 움직이는 방식에서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도 떠올릴 수 있었다. 관조적인 응시, 정적인 포즈, 시간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태도 등이 그렇다.
아시아 영화들을 매우 사랑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에 대한 동경심이 있다. 오즈의 첫 유성영화 <외아들>(1936)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며 닮고 싶어하는 영화 중 하나다.
흥미롭게도 같은 해에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1936)가 있었다. 말하자면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는 <모던 타임즈>의 주제를 <외아들>의 미학으로 찍어낸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수식이다 (웃음) 채플린 또한 정말 사랑해마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가 일면 진실로 코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정적이고 목가적인 영화처럼 보이지만, 가볍고 유머러스한 구석을 불어넣는 데 꽤나 노력한 영화다.
명상적이고 미니멀리즘적으로 내러티브가 구조된 한편 이 영화는 마냥 침착하고 단조롭게 흘러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대로 유머가 있고 차라리 장난스럽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이 대조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한 바가 있다면.
이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관객을 미혹하지 말자는 게 내가 영화를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다. 관객이 극장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테마이기도 한 시간, 그리고 자본주의의 이면을 보는 행위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영어 제목이 왜 UNREST인가.
스위스어 Unruhe를 영어로 번역한 것인데 시계의 심장부를 의미한다. 정치적 불안, 산업 불안을 뜻하는 뜻이 중의적으로 공존하는 지점이 좋았다.
베이징 중앙희극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베를린영화아카데미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 중국 유학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스위스에서 가능한 한 가장 먼 곳으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지리적인 측면에서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러다 베이징을 택한 건 그 도시의 엄청나게 거대하고 정신없는 역동성에 반해서였다. 또 모국어가 아닌 전혀 다른 언어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 역시 소망해왔던 일이다. 언어란 것은 절대적이지가 않다. 그것은 뇌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에 가깝지 않나. 같은 개념을 다른 언어로 사고하면서 영화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내 태도도 유연해졌다.
[글·김소미, 사진·오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