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 "우리는 예술을 통해 내가 아닌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다르덴 형제의 첫 내한이 성사됐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은 마스터클래스와 관객과의 대화(GV) 등 공식 일정을 바쁘게 소화하며 영화제 관객을 살뜰히 만났다. 그들의 첫 한국 방문을 성사시킨 신작 <토리와 로키타>는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 아동 문제를 다룬다. 체류증을 받지 못한 토리와 로키타는 합법적인 생존을 위해 불법적인 노동을 이어가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다.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언제나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의 삶을 담아왔지만, 최근 작품에서 그 범주는 유럽에서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로 확장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을 만나 그들의 영화가 현실과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지 들었다.
- 201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세 감독들의 초기 다큐멘터리 영화를 조명하는 ‘출발로써의 다큐멘터리: 세 거장의 기원’이라는 기획전이 열린 적이 있다. <레옹M의 보트가 처음으로 뫼즈강을 내려갈 때>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벽은 무너져야 했다> <어느 임시 대학의 강의> <조나단을 보라, 장 루베의 작품 세계>가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두 분에게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떤 곳인가.
뤽 다르덴 원래 2019년에 오기로 했었는데 아쉽게도 팬데믹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사실 영화사진진에서는 20년 전부터 한국에 와달라고 얘기했고 우리도 꼭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쉽지가 않더라. <토리와 로키타> 프로모션을 위해 여러 국가를 다니면서 이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더 절감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와 기자회견, 관객과의 대화(GV) 등 여러 공식 일정 때문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른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한국영화를 통해서만 알고 있던 한국에 대한 이해가 넓어진 것 같아 기쁘다.
- <언노운 걸> <소년 아메드>에 이어 <토리와 로키타>까지, 최근 세 편의 영화 모두 벨기에의 비백인 이민자들이 등장한다. <약속>도 이민자 이슈를 다뤘지만 당시 주인공은 백인이었다. 최근 유럽 난민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 피에르 다르덴 수년 전 어떤 신문 기사를 읽었다. 유럽에 이민 오거나 난민 신청을 한 수백 명의 아이들이 쉼터에 가지도 못하고 떠돌다가 만 18세가 되도록 체류증을 받지 못하면 결국 마약 같은 음성적인 조직에 몸을 담게 된다는 거다. 범죄에 내몰린 아이들이 결국 죽음에 이르러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아 취재를 하다가 2008년에 썼던 시나리오 초고가 떠올랐다. 당시엔 두 아이를 둔 이민자 여성의 이야기였다. 난민 신청을 한 국가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미성년자인 아이들만 남게 된다.
- 그러다 실제 친남매가 아닌 소년과 소녀가 주인공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 우정과 사랑의 테마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뤽 다르덴 이민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데, 소년과 소녀가 돌아가며 서로의 엄마 역할을 해주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 로키타가 결국 마약 재배소에 갇히는 설정을 했던 이유도 주인공들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상황을 그리기 위해서, 다시 말해 우정이라는 메시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약 범죄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서로를 배신하는 경우도 많은데, <토리와 로키타>는 끝까지 서로를 지켜내는 숭고한 우정을 그리고 싶었다.
- 벨기에 출신 백인 감독이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당사자성의 문제가 있다. <소년 아메드> 때도 무슬림이 아닌 감독이 연출할 때 생기는 한계를 지적하는 리뷰가 있었다. 원래 잘 알지 못했던 세계를 다룰 때 감독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뤽 다르덴 만약 흑인 감독이 <토리와 로키타>를 만들었다면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 그들의 희로애락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같은 작업을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예술가가 해낸다면 더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빈곤하고 폭력적인 사회를 겪어본 적이 없지만 그들 입장에 서서 소설을 쓸 수 있고, 그것은 토니 모리슨의 소설과는 다른 작품이다. 나이가 많은 백인 남성인 우리가 한국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찍는다면 당연히 한국인이 만든 영화와 다른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다르덴 형제가 만들었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 특히 2010년대부터 만든 최근작에서는 마리옹 꼬띠아르 같은 유명 배우와 함께 하기도 했지만, <토리와 로키타>에서 다시 비전문 배우들과 작업했다. 토리 혹은 로키타 쪽을 안정적인 연기력을 가진 기성 배우로 캐스팅하는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장 피에르 다르덴 어쩌면 로키타 역에 훈련된 배우를 캐스팅했을 수도 있다. 시나리오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12살 소년과 17살 소녀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아예 연기 경험이 없거나 경험이 있다 한들 필모그래피가 한두 편 정도밖에 없는 친구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처음 하는 친구들의 맞은편에 서서 그들의 시작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감독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분 좋고 아름다운 순간이 아닌가 싶다.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는 <토리와 로키타>로 배우 경력을 시작한 이후 이미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
- 극영화를 만든 이후에도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장르, 이를테면 판타지 영화처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뤽 다르덴 (농담으로)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볼까? 우리 스타일대로 만들면 꽤 괜찮을 줄 누가 알겠나. (웃음) 역사 영화를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이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을 하기로 했다.
장 피에르 다르덴 나도 동생과 같은 생각이다. (웃음)
뤽 다르덴 이 얘기는 단독 기사 감이다. 하지만 ‘어쩌면’이라고 했지 우리의 진짜 차기작이라고는 안 했다. (웃음)
* <씨네21> 1405호에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