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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 영화사에 그리고 한 제작자의 유산을 가장 직접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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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흥영화사에서는 총 36편의 작품이 만들어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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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편의 작품을 면면히 살펴보면 작품성이 높은 영화가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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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흥행적으로나 대중영화도 꽤 많이 있어요.
태흥영화사의 베스트3 작품을 꼽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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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품 중에 3편을 꼽으라면 <춘향뎐>, <축제>,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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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당연히 <서편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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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첫 번째로 <장군의 아들>을 뽑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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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이 <기쁜 우리 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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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경마장 가는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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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에는 <개그맨>이라는 작품을 꼭 뽑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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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취화선>은 2002년에 우리가 처음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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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화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고 또 국내 영화 시장에 자긍심과 지금의 한국영화 위상을 만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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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기여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태원 대표와 뜻깊은 기억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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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영화계에 직업으로써 발을 들여놓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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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임권택 감독님의 <개벽>의 연출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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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임권택 감독님이 <개벽>의 촬영을 진행하시면서 동시에 <장군의 아들 2>를 준비하고 계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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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창시절에 현장에서 조감독, 시나리오 작가를 겸해서 활동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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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도에 이태원 사장님께서 “84년부터 태흥영화사를 창업하는데, 같이 일을 하고 싶다.” 라고 제안을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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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40여 년 정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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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태원 사장님 3남 1녀 중 3남 이지승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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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89년도에 <장군의 아들> 오디션에 합격해서 배우로도 참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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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과 감독님의 추천으로 제작부 막내로 입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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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취화선>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이태원 대표와 뜻 깊은 기억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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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흥영화사라는 이름을 걸어서 창립 작품으로 <비구니>를 선정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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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할 때부터 굉장히 시끄러웠다고 사회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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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게 제작이 중단이 된 거예요. 압력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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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사장님은 감독님이 하고자 하는 것을 ‘그래 하자.’ 하는 결정을 내렸으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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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뒤로 가서 무슨 시비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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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로서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에게 오히려 자유롭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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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게 어떻게 보면 제작자다운 거예요. 그게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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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아마 영화인들은 잘 이해를 못하겠지만 그 당시는 옛날에 충무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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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으로 치면 이태원 사장님 혼자서 제작, 투자, 기획, 배급을 다 하셨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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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태흥영화사가 영화의 제작부터 홍보까지도 다 맡아서 했던 그런 시스템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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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본을 대면서 영화 제작할 수 있는 마지막 제작자가 이태원 사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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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런 제작자가 없어요
이태원 대표와 태흥영화사가 한국영화계에 남긴 유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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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양한 시도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들이 많이 세상에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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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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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게 태흥영화사의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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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흐름에 전환점이었던, 이제 21세기를 바라보고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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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8~90년대 한국 영화계의 중심에 태흥영화사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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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시스템이 붕괴되기도 하고 몰락하기도 하고 하는 과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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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새로운 시스템이 오지 않은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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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리를 잘 이어준 것이 태흥영화사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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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이 영화 역사가 한 103년 이상 되는 데에서 1/4을 중추적으로 주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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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끌어가는 제작자와 같이 일할 수 있었다는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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