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산책과 연애에 진심인 한경은 하루 동안의 산책 속에서 여러 여자를 만나고 연애를 소망한다. 또 다른 여름의 하루, 서촌의 네일 숍에서 일하는 보라는 한 남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 다른 남자를 이용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모를 이야기를 제안하는 영화감독과 기억을 잃은 배우 마리의 겨울날까지. 하나의 지역, 서로 다른 계절을 두고 여러 인물들이 주연과 조연, 단역을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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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는 일정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작지만 오묘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영화다. 이미 <더 테이블>(2016)에서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는 김종관 감독은 <최악의 하루>(2016) 등 그의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었던 서울 서촌이라는 공간에 계절의 변화라는 변수를 집어넣어 이야기를 더욱 달콤쌉쌀하게 만든다. '산책하는 남자', '숨 고르기', '마리'라는 세 개의 단락은 각각 가을, 여름, 겨울에 촬영됐을 뿐더러 그 계절의 정취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봄바람은 처녀바람, 가을바람은 총각바람'이라는 속담처럼 가을바람에 설렌 한 남자의 촐랑거리는 하루를 담은 '산책하는 남자'가 코미디 장르에 가깝다면, 무더웠던 낮 시간이 지난 밤에 한 남자와 썸을 타는 줄 알았으나 이내 진짜 속셈을 보여주는 한 여성의 이야기 '숨 고르기'는 멜로영화와 로맨틱코미디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다. 실제 삶과 연기 속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듯한 독립영화 배우의 이야기 '마리'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겨울철 공기처럼 보는 이를 일깨우는 심리 드라마처럼 보인다. 연우진, 문혜인처럼 김종관 감독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부터 옥자연, 이청아, 주종혁 같은 중견 배우, 그리고 장률, 전소영 같은 신인급 배우까지 다양한 연기자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당연하게도 영화의 배경인 서촌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다. 인트로 화면에 등장하는 벚꽃 풍경을 비롯해 영화 속 서촌의 사계는 보는 이를 유혹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흐린 창문 너머의 누군가>는 당장 서촌에 가면 영화 속 등장인물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영화다.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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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KIM Jong-k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