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다양한 주제와 장르의 영화들, 특히 높은 완성도와 독특한 주제의식을 기반으로 엄선된 영화들이 모이는 섹션이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는 베테랑 감독들의 작품들과 신예 감독들의 화제작들이 균등히 배치되었다.
올해 섹션에서 선보일 스무 편의 영화들 중 가장 많은 편수를 차지한 나라는 일본이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일본 영화의 부상, 특히 일본 독립영화와 신인 감독 들의 세계적인 진출이 반영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수행을 통해 겪은 영적 탐험을 그린 요시가이 나오의 다큐멘터리 <마사유메>와 학대 가정에서 자란 소년의 전후를 그린 우치야마 다쿠야의 <마비: 시비레>가 그런 작품들이다. 후자의 경우 도쿄 필맥스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차지했던 화제작이기도 하다. 쓰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한 남자>(2022) 이후로 3년 만에 귀환하는 이시카와 케이의 작품 <창백한 언덕 풍경> 역시 주목할 만하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1982년 소설을 영화화한 이번 작품은 히로시마 원폭 사건 이후의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다.
다라 반 두센의 실험적인 웨스턴 영화 <죽어가는 자들을 위한 기도> 역시 눈에 띄는 데뷔작이다. 1800년대 후반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는 마을의 풍경을 통해 전쟁의 폐해와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이 작품은 앞서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주목받았던 카를리스 베르그스의 다큐멘터리 <돌과 나비의 여정>은 53년간 같은 길을 걸으며 나비를 연구해 온 곤충학자 아트 샤피로의 일생을 서정적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형식적 시도를 보여주는 장르영화들 역시 포진해 있다. 노장 짐 셰리던이 공동 연출과 출연까지 겸한 <리-크리에이션>은 일종의 '밀실 법정 드라마'로, 이야기의 중심은 법정이 아닌 배심원단의 방에서 이루어진다.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한 프랑스 여성 감독의 실제 살인 사건과 <12인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1957)의 서사적 구조를 포개는 이 작품은 한 명의 배심원이 나머지 배심원을 설득시킨다는 이미 알려진 전개에 미제 사건이라는 미스터리를 더하며 서스펜스를 형성한다. 온드르제이 프로바즈니크의 <부서진 목소리들> 역시 90년대에 있었던 유명 청소년 합창단의 성폭력 사건을 현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카롤리나 카발리 감독의 <아라벨라의 납치>는 미래가 불투명한 홀리가 일곱 살 소녀를 우연히 납치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작 <아만다>(2022)에 이어 감독은 독특한 코미디를 통한 성장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다. 뮈리엘 당상부르의 <네이키드> 역시 성인영화 산업의 구태의연한 제작과정을 10대 소년의 시선으로 비판하는 발칙한 로맨틱 코미디다. 엘사 크렘저, 레빈 페터 공동연출의 <흰 달팽이>는 두 이방인의 위태롭지만 저항 불가한 로맨스를 그린다. 이 섹션의 유일한 동물 영화라고 할 수 있는 팔피 죄르지 감독의 <암탉의 모험>은 닭장 내부만도 못한 인간들의 비루하고 잔인한 세계를 관조하는 '암탉'의 여정을 좇는다. 맷 존슨 감독의 <너바나 더 밴드>는 커트 코베인의 밴드 너바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코미디영화지만 재치 넘치는 팝 컬처 레퍼런스와 이야기적 설정은 너바나의 명곡들만큼이나 훌륭하다.
이밖에도 가족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암흑의 역사와 소외된 공동체를 조명하는 캐나다 출신의 한국인 이민숙 감독의 <잃어버린 말들>, 호주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워릭 손턴의 <울프람: 사막을 건너는 아이들>, 소피 롬바리의 <푸른 왜가리>와 기예르모 갈로에의 <잠 못 드는 도시>, 깊이 있는 캐릭터 연구를 보여주는 제바스티안 브라메스후버의 <런던>, 시몬 메사 소토의 <시인>, 융쯔궝의 <사이클론>, 그리고 알레호 모기잔스키의 <종말의 승부> 등의 수작들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김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