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탄생한 이후 나라별로 다양한 사조가 있어왔다. '새로운 물결'은 신선한 흐름과 혁신, 생경한 이름들을 불러왔고 당대에는 찬사를 받았지만,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와 감독이 남아 있다. 시간은 냉혹하지만 정당하게도 대개 영화와 감독이 각국의 영화사에 진정으로 어떤 기여를 했는지 가려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영화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품고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기술과 문화가 얽혀 있다는 지점이다. 종종 가치 있는 영화들이 과거에 묻히거나, 저화질로만 남아 있거나, 책이나 문헌에 언급되는 정도로만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흥행이 실패했을 수도 있고, 저작권자가 사라졌을 수도 있고, 영화사를 보존하기 위한 문화 정책의 부재 때문일 수도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홍콩귀환: 시네마 + 아방가르드'라는 작은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 최초의 글로벌 현대 미술관 M+ 홍콩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준비되었다. 특히 이번 상영작 대부분은 M+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4K로 복원되었고 미술관의 '아시아 아방가르드 필름 컬렉션'(Asian Avant-Garde Film Collection)을 통해 전주에서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귀중한 영화를 복원하고 소장품을 열어준 M+ 홍콩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력에 감사를 표한다.
이 특별전은 홍콩 뉴웨이브나 유명한 장르영화들을 재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1960년대에서 지금까지, 홍콩영화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관된 몇몇 감독과 영화 들을 살펴보려는 취지다. 이 독특한 작품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마땅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수작들이며, 한국 최초로 공개하게 되어 영광이다.
탕슈쉬엔의 <동부인>(1968)은 홍콩 영화산업 밖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아트하우스 영화 중 하나이다. 전통적인 사랑 이야기를 유럽적인 감성과 미학으로 풀어낸 이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스런 여성의 감정을 전복적 이미지로 표현한 독창적이고 선구적인 작품이다.
왕가위의 멘토이자 협력자로 알려진 탐가밍이 연출한 <애살>(1981)은 드라마, 스릴러, 로맨스 장르를 절묘하게 조화시킨다. 다채로운 색감과 과감한 아이디어로 채운 미장센은 인물들의 운명과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동시에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1980~90년대 한국에 홍콩영화 붐을 이끌었던 임청하의 연기와 홍콩영화계 최고의 미술감독이라 불리는 장숙평의 작업 또한 이 영화의 감탄스러운 부분이다. <동부인>과 <애살>은 M+의 주요 파트너인 샤넬이 지원하는 'M+ Restored' 프로젝트에 포함된 작품이다.
이번 섹션에서 가장 전위적인 영화이자 최초로 공개되는 큐레이팅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적 혁명, 공적 공간: M+ 아시아 아방가르드 필름 컬렉션'은 3편의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유신정권에 반기를 들어 16mm 카메라를 총처럼 들고 실험영화 제작에 앞장선 개척자 한옥희의 <무제 77-A>(1977)와 대만 개념미술을 발전시킨 대표 아티스트 천제런의 <기능장애 No.3>(1983), 그리고 필리핀 퀴어영화의 선구자 닉 데오캄포의 <혁명은 노래 후렴처럼 돌아온다>(1987)는 모두 세 국가의 계엄령 시기에 제작되었고 모두 거리를 무대로 삼았다. 억압적인 정권에 맞서기 위해 예술가들이 변화를 외치며 영상매체를 활용한 방식과 에세이 필름, 퍼포먼스, 실험영화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 저항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아시안 아방가르드 필름 컬렉션'은 사넬의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메리 스티븐 감독의 초기작 <비단의 그림자>(1978)도 함께 상영한다. 2024년 M+ 홍콩의 지원으로 복원을 한 영화이다. 1935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지만 파리에서 촬영된 극영화로 어린 시절 친구였던 두 중국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식민지화, 이주, 소속감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에리크 로메르의 편집감독으로 활동한 업적도 중요하지만 감독으로서의 활동도 재주목할 필요성을 느끼며 위의 6편의 M+ 홍콩 지원작 외 메리 스티븐의 신작이자 자신의 이름을 통해 가족사를 탐구하는 신작 <팔림프세스트: 이름에 관한 이야기>(2025)를 추가로 상영한다.
영화는 사라지지 않지만 잊힐 위험에 처하곤 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복원하고 지속해서 상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계속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유지시키고 살아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결국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이루는 세상, 우리의 삶과 기억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과거는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가 언제든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문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