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을 기치로 전 세계의 비범한 영화들을 선보이지만, 영화를 하나의 언어로 대하며 시대의 흐름에 형식적으로 가장 대범하게 반응하는 작품을 모은 곳은 단연 '영화보다 낯선' 섹션이다.
인공지능 기업들이 인간의 경험과 활동이 최소화 될 것이라 예측하는 반면, 이곳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은 조금 다른 길을 제시한다. 개인적인 경험과 수많은 개별적 세계가 영화로 변모되어 축소가 불가능할 만큼 무궁무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가장 실험적인 영화조차도 오직 창작자 자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고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이 묘사하는 삶은 사회라는 환경에 놓여 있음을 인지하는 개인의 이야기다. 기술 발전과 정치·경제·외교와 같은 시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삶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전통적인 서사 형식이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 무언가 말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허구와 다큐멘터리가 융합되고 동시에 에세이적 요소가 스며든 새롭고 파편화된 형식들이 오히려 현재를 더 잘 대변한다.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시작과 중간, 끝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양식의 영화들이 잃어버린 현재의 의미와 힘을 '확장된 영화(Expanded Cinema)'가 되찾아주고 있다.
테레사 아레돈도 루곤의 <하얀 정글>의 가족 이야기는 가장 개인적인 기억이 아름다운 영화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카를로스 카사스의 <크라카타우>는 세계를 뒤흔든 화산 폭발 지역으로 향한 지리적 탐험을 영상과 사운드로 구현한다. 샤론 록하트의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제임스 베닝의 <여덟 개의 다리>는 혼돈으로 가득한 지금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처방을 제시한다.
모린 파젠데이루의 <계절들>과 니콜라스 페레다의 <구리>, 레인 베르메트의 <레버스>와 같은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다양한 방식을 제시하는 영화부터 서사와 감각적 경험을 혼합한 파브리스 아라뇨의 <호수>, 가브리엘 아소린의 <어젯밤 나는 테베를 정복했다>까지 독특한 작품들이 준비되어 있다.
마지막 장편으로 앙겔라 주머레더의 에세이 다큐멘터리 <바틀비를 위한 B>는 문학 속에 존재하는 신화적 인물을 현대 사회의 사람, 그리고 행동 양식과 연결하는 작품이다.
관객에게 영화의 물질성을 선사하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으로 이장욱 감독이 이민휘 음악감독과 함께 신작 <침묵의 빛>의 16mm 영사와 첼로, 피아노 공연 실연을 포함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올해 소개하는 10편의 장편과 이 짧은 글에 모두 요약하기 불가능한 15편의 단편을 보는 경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화가 발전될 가치가 있는 예술임을 증명할 것이다. (문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