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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Midnight Cinema

올해 불면의 밤의 가장 큰 특징은 일본영화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라인업을 구성하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일본영화가 많아졌고, 자연스레 일본 장르영화의 과거부터 최신의 흐름까지 보여주게 됐다. 게다가 최근 떠오르는 일본 장르영화의 새로운 인물 우가나 겐이치에 관한 미니 특별전까지 함께 열다 보니 일본영화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질 법하다. 이번 상영작 중 일본영화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완전히 우연에서 기인했다고 다시 한번 밝힌다.
올해 상영작 중 가장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두 편의 일본 V시네마 영화다. 일본 영화산업 상황이 최악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비디오 전용 영화로 시작된 V시네마는 적은 자본으로 자유로운 장르적 실험을 벌이며 침체된 일본영화계에 숨통을 틔웠다. 이 소장르가 영화 역사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이라면 구로사와 기요시, 미이케 다카시, 아오야마 신지 같은 훗날의 거장들을 발굴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내 마음에 흉기 있다>(1996)는 아오야마 신지의 초기작으로, 마약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폭력 조직에게 쫓기는 여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추격극이다. 같은 해 만들어진 <헬프리스>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함께 상영하는 <미나미의 제왕 Ver. 50>(2004)은 말 그대로 V시네마의 전설적 시리즈인 <미나미의 제왕>의 50번째 영화다. 만화 『난바금융전 미나미의 제왕』을 원작으로 삼는 이 시리즈는 1992년 1편이 발표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져왔다. 불법 사채업자 만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 시리즈는 만다 긴지로가 돈 문제로 얽힌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는 액션 장르물로, 50번째 영화 또한 만다에게 돈을 빌려가던 중소업자들이 거대 조직에 의해 피해를 입자 만다가 직접 해결에 나선다는 이야기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또 다른 V시네마 영화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 영웅계획>(1996)도 상영하며(시네필전주 섹션), 이들 영화는 영화평론가 톰 메스의 기획으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열린 V시네마 특별전을 참고했다는 점을 밝힌다.
또 하나의 일본영화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는 기이한 분위기 호러영화 <애니마트>로, 한 아르바이트생의 시선을 통해 현대 세계의 모순이 응축돼 있는 공간으로서 편의점을 조명한다. 악몽 같은 순간들이 우리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여진다. 소메타니 쇼타와 가라타 에리카 같은 유명 배우가 출연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라트비아 애니메이션 <신의 개>는 마녀사냥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던 17세기 라트비아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삼는다. 신의 메신저를 자처하는 사제와 그 뒤에 자리한 권력자가 지배하는 이곳의 부조리와 저항이 판타지와 공포 속에서 묘사된다.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묘사된 화면도 매력적이어서 <헤비 메탈 Heavy Metal>(1981) 같은 고전 컬트 애니메이션과 비견된다. <프로젝토 글로벌>은 1980년대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하는 긴장감 넘치는 정치 스릴러다. 30년 이상 지속됐던 살라자르의 독재를 몰아낸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의 열기는 이미 식었고 사회에는 허무와 탄식이 가득하다. 영화는 극좌 무장 단체 FP-25 조직원들을 내세워 그들의 무모한 '혁명' 운동 과정과 결말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영화 <호숫가의 성모>는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초자연적인 힘과 공포를 다룬다. 유독 더웠던 2001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한 소년에게 빠진 나탈리아라는 소녀가 사랑을 갈망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사춘기의 심리적 풍경과 사회 상황, 그리고 토속적인 전설까지 얽어 놓아 보다 복잡하고 풍성하게 읽혀진다.
한편, 올해 불면의 밤 섹션에는 최근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장르영화 감독 우가나 겐이치 감독의 미니 특별전이 포함돼 있다. '가능한 최선의 호러, 우가나 겐이치'라고 이름 붙여진 이 행사는 우가나 감독의 최신작들을 만나는 자리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록 밴드 게스이도즈 The Gesuidouz>(2024)를 기점으로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그는 2025년 한 해 동안 무려 세 편의 영화를 공개했다. 우선 <저주>는 대만 친구의 소셜미디어에서 기이한 영상들이 올라오는 동시에 훼손된 시체가 발견되자 주인공인 일본 여성 리코가 대만으로 향한다는 이야기로 J-호러가 현재 진행형임을 알게 하는 영화다. <불완전한 의자>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한 의자 제작 장인의 미친 행각을 섬찟한 분위기 안에서 드러내는 호러영화다. 반면, <브루클린의 Z급 감독을 좋아하게 됐어>는 미국에 홀로 머물게 된 일본 유명 여성 배우가 우연히 미국 독립영화 감독과 함께 호러영화를 찍게 된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우가나 감독은 이 와중 영화 한 편을 더 만들었으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첫 상영을 하게 되는 <세계의 끝으로부터>가 그것이다. 어색한 침묵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던 아버지와 딸의 상황은 아버지의 신체에 기이한 변화가 생기면서 크게 들썩이기 시작한다. 지극히 미니멀한 구성 속에서 초현실적 공포를 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 (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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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특별전: 가능한 최선의 호러, 우가나 겐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