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았으면 150억짜리 프로젝트였을 거다."(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
1984년 제작 중이던 임권택 감독의 비운의 미완성작 <비구니>의 부분 복원판이 공개됐다. 4월28일 오후 2시 CGV전주고사 1관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협조로 부분 복원된 70분 가량의 영화와 <비구니> 제작진의 회고와 소감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특별 상영했다. 상영이 끝난 뒤에는 김영진 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임권택 감독과 주연배우 김지미, 송길한 시나리오 작가가 무대에 올라 관객과 함께 시네마 클래스를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리를 가득 메운 객석에는 <비구니>의 제작자였던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의 아들 이지승 감독, 배우 안성기와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 등 수많은 영화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그만큼 이 작품의 부분 복원 상영이 한국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비구니>는 야심의 프로젝트였다. 파계승(전무송)과 젊은 승려(안성기)의 동행을 통해 불가의 도를 소승적 관점에서 탐구한 <만다라>(1981) 이후, 임권택 감독은 보다 대승적 관점에서의 불교를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비구니>를 기획하게 된다. 하지만 10.27 법난(1980년 제5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집권 신군부 계엄군이 불교계 정화를 추진한 사건)을 경험한 불교계가 비구니의 명예 실추를 이유로 대규모 제작 반대 시위를 벌이면서, <비구니>의 제작진은 촬영을 중단해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이날 상영된 <비구니>의 부분 상영본을 보며 영화의 제작진이 경험했을 상실의 감정을 짐작했다. 사운드가 소실된 까닭에 정확한 내용을 유추하기는 어려웠지만, 한 여인이 출가를 결심하고 민머리로 삭발하는 과정부터 전쟁이 한창인 길 위에서 때로는 고통을, 때로는 치욕스러운 감정을 경험하며 불교의 도를 구하는 과정이 유려한 영상으로 구현되었다는 점은 분명했다. 특히 배우 김지미의 얼굴은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다. 인간의 희노애락을 넘어 어떤 성스러움까지 엿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임권택 감독이 <비구니>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체다. 시네마 클래스에서 오갔던 <비구니> 제작진의 대담을 이어서 전한다.
임권택 내가 찍은 영화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웃음). 서사가 이어져야 유추라도 할 수 있는데 그러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런 필름을 보여드려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김지미 <비구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영화 제작이 중단되고 나서 가슴앓이가 너무 심했다. 그 기간 동안 감독님, 작가님과 함께 전국을 방황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길소뜸>(1985), <티켓>(1986)이다. <비구니> 초기에 근본적인 과정들을 제시한 것이 나였다. 기획도 함께 맡으려 했지만, 여배우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큰 짐이라는 감독님의 조언에 태흥영화사로 작품을 넘기게 됐다. 때문에 태흥영화사가 너무 큰 피해를 봤다. 개인적으로도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컸다. 마치 임신을 했는데 자식이 건강하지 못해 아이를 잃은 느낌이었다. 이러한 아픔을 더 이상 후배 영화인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길한 <비구니>의 시나리오는 남아있다. 하지만 시나리오만 남아있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완성된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깝다. 감정적인 부분은 많이 잊혀졌지만, 김지미 선생님이 가장 고생했던 장면(영하 13도의 겨울 냇가에서 알몸으로 기도하는 장면)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당시 나는 다른 작품을 작업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잠시 자리(현장)를 비웠다. 이러한 방식으로나마 <비구니>를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가 <비구니>를 복원한 것은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채워나가는 것이다. 영화를 복원해주신 관계자분들, 다큐멘터리를 촬영해주신 박경훈 감독, 짧은 음악이지만 좋은 음악을 제공해 주신 것에도 감사드린다.
김영진 이 작품에 대해 온전한 평가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부분 복원을 하고 뜻을 기리는 것은 <비구니>가 가지고 있는 현재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류영화에서는 만들어지기 힘든 격조와 깊이가 있는 작품이 아닌가. 오늘날의 후배 영화인들에게도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송길한 <만다라>가 단순히 소승적 차원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영화의 끝에는 넓은 대승의 세계로 나가는 지점이 있다. 이 지점이 비구승들의 세계인데, 그 때 당시의 이야기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지미 배우를 중심에 두고 대승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불가를 중심에 두었지만, 크게는 사람의 인생을 다루는 것과도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임권택 인생을 살아낸다는 것은 자기완성의 과정이다. <만다라>와 <비구니>는 불교라는 범주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긴 영화인생동안 수행자의 자세로 접근했다. 마지막에는 그것이 해탈이나 완성의 세계가 되길 빌었는데, 아직도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인생이 끝나기 전에 그 지점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지만,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잘 살아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
김지미 긴 시간 동안 영화에 출연하지 못했다. ‘제의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기획의 과정에 뛰어들자’ 라는 생각으로 지미필름을 만들었다. 여러분도 이런 자세로 포기하지 말고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 주셨으면 한다.
임권택 사실 <비구니>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세상에 나오면 부끄러운 상처들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분의 노력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나 또한 이 기회를 통해 <비구니>로 상처를 받았던 많은 분들에게 사과를 드릴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그만 <비구니>는 잊어야겠다.
글 장영엽, 조선호 객원기자·사진 박종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