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에 할 일 없는 사람 모이세요! : 전주PICK 어른되기의 팍팍함을 말하는 세 편의 영화
안녕하세요. 전주국제영화제 뉴스레터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일상생활 중에는 숙고해보기 어려운 커다란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나라는 건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왜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무리를 이루어 사는지, 산다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상당히 막막하고 당혹스러운 질문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특이한 영화 세 편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모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고 국내에 정식 수입한 작품으로, 위의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 곳곳에 숨어있는데요. 길고 느리고 냉혹한 이야기들이라 관람이 다소 힘들 수는 있겠으나, 모처럼 맞이하는 연휴를 기회 삼아 한번 시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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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 <소년 파르티잔> DIRECTOR | 아리엘 클레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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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NOTE
<소년 파르티잔>은 파시즘과 폭력 그리고 세상의 위선을 폭로하는 아름다운 우화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여자와 아이들만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이야기를 통해 계급, 폭력, 자본의 민낯을 폭로한다.
또한, 윤리적 가치에 눈을 뜨는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희망과 삶의 가능성을 그려내기도 한다. 공동체를 이끄는 악마적인 캐릭터이자 유일한 남성 어른인 그레고리 역은 뱅상 카셀이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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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수잔나와 알렉산더라 불리는 소년이 낯선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다. 알렉산더는 암살 훈련을 받고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해 스타가 된다. 바깥세상을 드나들면서 알렉산더는 공동체의 수상한 점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훈련을 받는 아이 중 하나가 그레고리에 의해 닭장에 갇히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알렉산더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그레고리의 폭력성과 공동체의 어두운 면모에 눈을 뜬다. 자신이 속한 세계가 지상의 낙원이 아니라 지옥임을 깨닫게 된 알렉산더는 갓 출산한 동생을 안고 세상과 공동체를 잇는 지하 통로에 숨는다.
영리한 스릴러의 구조와 밀폐되고 부패한 세계의 이미지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타락한 바깥세상과 공동체 내부를 엮어버린다. 우리는 악마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다. 소년 알렉산더의 몸부림을 통해 폭력에 맞서야 하는 연약한 힘들을 성찰하게 된다. 그것은 악몽과도 같은 순간으로 이어진다. (이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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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파르티잔>은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은유로도 무척 훌륭히 작동할 뿐만 아니라, 단지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아이가 성장하는 이야기로 관람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모순을 얼마나 폭력적인 것으로 인식하는가에 관한 통찰을 제공해주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그레고리가 거짓말을 해요.”
영화의 한 대목에서 주인공 알렉산더는 어머니 수잔나에게 속삭여 고백합니다. 수잔나는 이에 관한 정확한 설명을 회피하려 들지만, 그레고리는 더 이상의 부연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해 전달합니다. 그레고리가 거짓말을 한다, 라고요.
아이에게는 제 부모가 영웅이나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실은 그저 한 명의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커다란 숙제일 겁니다. <소년 파르티잔>에서처럼 양육자 편에서 스스로의 인간됨을 은폐하려 들었을 때는 더더욱 그렇고요. 아이가 발견한 부모의 흠결이 도무지 사소하지 않고 중대한 문제와 결부될수록, 그가 느끼는 혼란은 거세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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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모는 언제나, 어느 경우에나 완전하지 않습니다. 실수를 저지르고 화를 내며 타인에게 공정치 못한 보복을 가하기도 하고, 거짓말도 합니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외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할 정도로 폭력적이기도 하죠. 따라서 아이는 언젠가 인간인 부모와 대면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해마지 않았던 이가 대단히 평범한 인간이거나 혹은 대단치도 못한 악인일 수 있으며, 세상의 많은 일이 사실은 이렇듯 헐겁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죠.
이윽고 아이는 자신에게도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웃어넘길 수도 있겠고… 혹은 알렉산더처럼 자신보다 연약한 누군가를 위해 저항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부모의 인간됨과 화해하는 과정은 세상의 모순과 화해하는 과정의 단초가 되고, 나아가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알렉산더 역시 무럭무럭 자라서 완전하지 못한 어른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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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클레이만 Ariel KLEIMAN 1985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잠수함의 일상을 스릴러 형식으로 만든 <어제보다 깊숙이>(2010)를 선댄스 영화제에 공개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부모님과 함께 보았던 <옐로우 서브마린>(1968)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이 작품은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공동 각본가이자 여자친구이기도 한 사라 싱글러와 함께 <소년 파르티잔>의 스토리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선댄스영화제가 주관하는 장편시나리오 워크숍에 의해 개발 되었으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완성된 화제작으로는 <위플래쉬>가 있다. <소년 파르티잔> 역시 올해 선댄스 영화제의 최고 화제작 중 하나로 각광을 받았으며, ‘월드시네마’ 촬영상을 수상하였다. 그가 연출한 단편영화 <어제보다 깊숙이> 또한 ´월드시네마 스케이프: 스펙트럼 단편´에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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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서 관계맺기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DIRECTOR | 후 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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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NOTE
후 보의 4시간에 달하는 데뷔작은 분리된 네 가지 이야기를 엮는 다중 플롯 구조를 가지고 있다. 네 인물을 연결하는 것은 의도치 않은 사고로 학교 불량배들에게 상처를 입힌 십대 소년 웨이부다.
부의 10대 여자친구 링, 요양원에 보내질 예정인 진, 느닷없이 주변인들에게 폭발하는, 자기혐오에 빠진 동네 폭력배 청은 암울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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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전의 논란을 낳았던 후 보 자신의 소설에 기초한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한순간의 희망도 찾기 힘든 이 절망의 연대기는 인내심 있고 웅장하게 인간의 고통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초상화를 그린다.
성급한 경제발전 추구를 따라잡지 못한 개인의 퇴조, 불만에 찬 젊은이들과 산업도시에 사는 범죄자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지아장커의 초기영화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 선택된 미학과 스토리텔링은 전적으로 후 보의 것이다. 재능있는 이야기꾼이자 강인한 완력의 감독 후 보는 지난 10월 스물아홉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장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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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의 현실을 무척 핍진하게 그려낸 영화로 많은 관객과 평론가의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234분이라는 긴 상영 시간에 우선 놀라게 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영화가 제공하는 서사에 빠져들어 가면서부터는 어느덧 마법처럼 ‘그래, 인물 네 명을 다루려면 4시간은 필요하지. 심지어 4시간에서 6분이나 모자라잖아’라고… 일종의 내적 합의에 도달한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작품 안에서 유독 꽌시(關係·관계)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는 걸 알게 되실 텐데요. 꽌시는 한때 중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키워드 중 하나로 다투어 소개되기도 했던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관계’라는 의미이나, 일반적으로는 ‘인맥’이나 ‘인간관계’에 더 가까울 이 말은 일반적으로 부정적 함의와 긍정적 함의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국 사회에서 ‘꽌시’는 각종 사회 시스템의 공백을 메꾸는 강력한 수단이자 해결책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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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그곳에 있어>에서도 이 단어는 영화의 메시지를 형성하는 데 일조합니다. 인물들의 대사를 유심히 들어보면, 대체로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다’ 등의 대목에서 ‘꽌시’라는 말이 활용되는데요.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주요 인물은 ‘우리’라는 감각, ‘꽌시’가 제공하는 안정된 울타리 바깥으로 밀려났거나 시시각각 밀려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관계의 안쪽이 아닌 바깥에 놓여있고 따라서 이들이 맞닥뜨린 폭력 앞에서 아무도 그것이 ‘나의 책임이다’ 혹은 ‘나의 잘못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 책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해결해보자’라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도 없죠.
그래서 이들은 자꾸만 떠밀리기를 반복합니다. 밀려나고 밀려나서 이윽고 만저우리에 있는 코끼리를 보러 갑니다. 코끼리를 만났으니, 이제 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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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보 HU Bo 1988년 중국 출생. 북경전영학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였다. 두 편의 단편을 연출하고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단편 <디스턴트 파더>(2014)로 골든코알라중국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받았으며 <나이트 러너>(2014)는 금마장에 초정되었다.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는 2017년 10월 작고한 그의 장편 데뷔작이자 유작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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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조건을 실험하는 영화 <토리노의 말> DIRECTOR | 벨라 타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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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NOTE
영화는 니체의 일화로 문을 연다. 1889년 1월, 마부의 채찍질에도 꿈쩍 않는 말을 본 니체는 뛰어가 말의 목에 팔을 두르고 울었다. 알다시피 며칠 뒤 니체는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마지막 10년을 식물인간처럼 살았다. 벨라 타르는 니체의 후일담 대신 그 말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이어지는 4분 20초의 롱테이크는 타르 식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다. 거센 흙바람에 맞서 귀가하는 마부와 말과 마차를 가까이 혹은 멀리서 집요하게 포착한 카메라는, 빅토르 시외스트룀의 <유령마차>와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를 붙여 놓아 실로 경이로운 순간을 창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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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서른 개의 쇼트로 구성된 이후 140분은 마부와 딸(그리고 말)이 황무지의 스산한 공간에서 보내는 엿새를 담는다. 불을 지피고 물을 길어오고 옷을 갈아입고 말을 돌보고 감자를 먹고 잠자리에 드는 시퀀스를 반복하는 <토리노의 말>은 니체적이면서 동시에 반니체적이다. 종말의 징후, 즉 삶의 시련 앞에서 부녀는 흔들리지 않는 냉엄함과 꺼지지 않는 에너지로 견딘다.
그러나 마부와 딸은, 평생 하층민과 말 한 번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니체가 꿈꾼 고귀한 영혼과 거리가 먼 존재다. 영원회귀, 삶의 시험, 그리고 그것의 긍정(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이걸 열정이라 표현했다)을 체화한 <토리노의 말>은 (타르가 희구했을) 무(無)로서의 이미지와 유물론적 영화와 재현 너머의 세계를 완성한다. 삶이 그렇듯 내러티브를 버린 영화에서 우리는, 휘바람에 머리가 날리는 여자와 한 손으로 뜨거운 감자 껍질을 벗기는 남자와 죽을힘으로 버티고 선 말의 삶을 더불어 살게 된다.
영화의 배경보다 4년 전, 고호는 하나의 그림으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의미 깊은지 보여준 바 있다. <토리노의 말>은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적 답이다. 타르는 <토리노의 말>이 마지막 작품이라고 공언했는데, 21세기의 영화는 어쩌면 그의 빈터를 메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용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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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인 사이에서 몬스터 피스로 회자되는 <사탄 탱고>를 연출한 벨라 타르 감독의 마지막 작품, <토리노의 말>은 폭풍 속에 남겨진 두 명의 부녀와 말 한 마리가 보내는 6일간의 시간을 다룸으로써 관객에게 죽음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천착하는 영화입니다.
죽음을 명사형으로 다루지 않는 영화라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는데요. 감독은 죽음을 일종의 상태로, 결과에 이르는 과정으로, 동사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죽음 자체에 관해서는 무엇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한 무언가의 상태가 어떠한지 묘사할 수 있고 그가 거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논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죽음’이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겠는데요. 살아있는 인간은 오직 살아있음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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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다운 과감함과 겸손함을 두루 갖춘 벨라 타르는 따라서 <토리노의 말>에 준비된 엿새를 통해 ‘죽음’이 아닌 ‘죽어감’을 해설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에 등장한 두 명의 인물과 한 마리의 동물에게서 생이 선물한 것들을 하나씩 앗아감으로써 이들의 생애에 담긴 내용물을 모두 증발시키고 그 형식만을 남기는 일에 성공합니다.
이들은 대화를 나누지만 서로 교감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식탁 위에는 매 끼니마다 간단히 조리된 음식이 올라오지만, 도무지 그걸 '요리'라고 부를 수는 없겠습니다. 이들에게도 시간은 공평히 흐르지만, 거기서 의미가 담긴 순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이들이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무엇을 빼앗기고 있는지보다 본래 이들에게 ‘주어졌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새기게 됩니다. 나날이 죽어가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가능하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제대로 ‘살다’ 가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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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타르 Bela Tarr 1955년 헝가리 페치 출생. 16살부터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으며 1977년 가 첫 장편 작품이다. 81년 연극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 1990년 이후 베를린영화아카데미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유럽영화아카데미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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